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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무언가 쓰려 한다. 며칠 전 한국남자와 말다툼 끝에 질 떨어져서 여기 못 있겠네요. 꼬추들끼리 재미있게 노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난 것이, 그 한국남자가 박박 우기며 말 같지도 않은 말 했던 것이, 아무도 그 헛소리를 막지 않았던 것이, 그 공간 그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분노만이 문제였던 것이 기억에 박혀 떠나지 않는다. 기억을 고이 접어 날려버리기 위해 처음부터 정리를 해봐야겠다.

내가 중간에 잠시 나갔다 왔을 때, 사람들은 화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언니1, 2가 굳이 여성을 가리켜 잘생겼다표현하는 것이 불쾌하다는 말을 했다. 한국남자는 그냥 칭찬일 뿐이라고 말했다. 언니1,2는 그게 아니라고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국남자는 그건 그 사람들이 문제인거죠, 단어 자체를 나쁘게 들을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아무도 그 한국남자의 무례함을 지적하지 않았다. 지금 이 부분을 쓴 것만으로도 가슴이 꽉 막힌다. 그날 가장 화가 났던 부분은 이 부분이 아닌데도 말이다.

잘생겼다는 표현이 외모 이야기였으니 어째 저째 화장 이야기로 넘어갔다. 어린아이들이 화장을 한다는 거 였다. 좀 점잖은 편의 중년 남자는 화장품을 금지해야해. 화장을 금지해야해.”라고 말했다. 나는 왜 화장을 금지 하냐고, 금지하려면 화장을 하게 만드는 사장님들, 고용주들을 단속해야한다고 말했다. 이걸 변명하는 게 수치스럽지만, 내가 주장한 단속의 필요성은 화장을 금지할 바에는을 전제로 한다. 여성들은 이미 너무 많은 억압 속에 살고 있다. 화장을 금지해도 화장의 억압으로부터 갑자기 벗어날 수는 없다. 사람들이 화장 때문에 기괴해지고 있으니 화장을 금지하자는 건 그저 그 괴로움을 내 눈에 안보이게 하라는 배부른 발상일 뿐이다. 화장하는 행위에는 아무 죄가 없다. 화장은 얼굴을 도화지 삼아 그림을 그리는 재미있는 일이다. 나쁜 것은 그 재미있는 일을 매일 억지로 하게 만드는 사회다. 여자들은 당연히 화장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나쁘다. 서비스직 사람을 뽑으면서 성별이 여성일 경우엔 당연히 화장을 기대하는 것이 나쁘다. 여성인 사람이 화장을 설설 하기 시작하면 화장은 안하니?”라고 굳이 물어 화장을 하게 만드는 것이 나쁘다.(‘화장은 안하니?’라는 질문은, 사람에 따라 립스틱은 안바르니?’, ‘눈화장은 안하니?’, ‘비비크림은 안바르니?’ 등으로 세부화된다.) 그러니 화장 코르셋을 법으로 해결하겠다면, 나쁜 것들을 처벌해야한다.

한국남자는 화장을 해야 하는 직업이 있잖아요.”라고 끼어들었다. 화장을 나쁘게 말하는 게 굉장히 아니꼬웠던 모양이다. 나는 여기서부터 이미 너무 화가 나서 ~ 여자들이 하는 직업이 화장을 해야 하는 직업이죠.” 그렇게 말했다. 한국남자는 아니, 아나운서나 ……. ” 라며 입을 뗐다. 나는 그 말을 끊고 같은 직업군일 때 성별에 따라 요구되는 화장의 강도가 다른 것을 말했다. 씨발 그냥 머릿속에 여자 아나운서 옆에 남자 아나운서가 있는 모습을 생각해봐라. 나이부터가 남자는 늙탱이가 와서 쳐 앉아있고, 여자는 이 이상 말끔할 수가 없는 인상이다. 화장의 필요성은 직업이 아니라 성별로 나눠진다. 이 사회는 여성에게 화장을 강요한다. 아이들에게도 눈이 있다. 티비 속에 나오는 여자들 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서비스직 여성들이 기본 화장이랍시고 비비크림을 바르고 쉐도우나 아이라인을 그리고, 립스틱을 바르고있는 것이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보이는데, 스스로 여성이라는 자각이 들면 당연히 화장을 하려 들겠지.

한국남자는 화장이 필요한 직업에 대한 개소리에 이어 고객의 니즈가 있으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 남혐 인구가 사회를 장악해서한남을 학대하기 원하는 고객들의 니즈가 생기면 그는 어쩔 수 없이 따를 것인가? 고객들의 니즈고 자시고 여성의 맨얼굴은 싫다는 고객들의 폭력적인 선호도에 따라 여성들에게 화장을 강요하는 회사와 사업주들을 여성들은 이해해야하는가?

그리고 이 같잖은 말싸움이 어떻게 굴러갔는지 모르겠다. 그 남자가 저부터 변해야죠. 주변 사람들에게 화장 강요하지 않기.”그렇게 말했다. 내가 가장 빡쳤던 부분이다. 자기부터 변하면 된다는 발상이 너무 해맑았다. 내가 뭐라 말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자기 혼자 닥칠 것이 아니라 주변에 화장 고나리하는 꼰대들을 설득해야한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아무튼 그 한국남자는 네 전 설득해요. 제 주변사람들 설득해요.” 그렇게 말했다. 내가 대체 그렇게 설득해서 세상이 어느 세월에 변하느냐 말했다. 그 남자는 내게 화장 강요하는 사람들 금지하는 법 만드려면 국회의원들 설득해야하는데 그건 어떻게 하시게요?” 그렇게 물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설득하고계신데요? 궁금해서그래요. 저 여태 한 번도 못봤어요.” 그렇게 말했다. 한국남자는 제가 그걸 왜 증명해야하는지 모르겠는데요.” 그렇게 말했고, 나는 가방을 둘러메고 일어났다. “질 떨어져서 여기 못있겠네요. 꼬추들끼리 재밌게 노세요.”

신발을 신고 나서는 나를 향해 점잖은 편의 중년 남성이 일어나 그렇게 가면 어떡하느냐고 말렸던 것 같다. 내가 화가 나서 문을 쾅 닫고 나갔을 때도 중년 남성은 나와서 뭐라 나를 불렀었다. 나는 마음이 조금 물렁해질 뻔 했으나 너무 화가 났다. 지금도 화가 난다.

언니1,2는 언성이 높아지기 전에 내려가 담배를 피고있었다. 마주친 내가 담배 한 대 빌려 피우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했다. 그러자 저 사람은 할 말이 있어서 하는게 아니라, 네가 계속 반박을 하니까 계속 말하는거야. 그러니까 네가 그냥 무시해.” 그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시하는 것, 신경 끄는 것이 참 쉬운 모양이다. 그렇게 남에게 손쉬운 해결책이라는 듯이 제시하다니. 나는 무시하려면 안봐야죠. 그래서 지금 가잖아요.” 그렇게 말했다. 언니들은 자기들이 그 한국남자를 막아주겠다며, 아니면 소파 있는 방 가서 우리끼리 얘기하자며 나를 붙잡았다. 나는 저런 공간에 굳이 그렇게까지 있고싶지 않아요.” 그렇게 말했다. 삔또가 상한 듯 한 언니가 내게 저런 공간이 어떤 공간인데?” 물었다. 나는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공간이요.” 그렇게 말했다. 아무튼 언니들은 올라갔다. 그리고 그 중 한 언니는 그 와중에 내게 집에 옷이 없어? 왜 그렇게 목 늘어난 티를 입고있어.” 그렇게 말했다. 그건 비난도 아니고 질문도 아니었다. 그냥 그 언니가 눈에 보이는대로 아무렇게나 하는 말이었다. 남이사 구멍이 뚫린 옷을 입든 목이 늘어난 티를 입든 지적하는건 무례한거라고 믿지만, 그래도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거기 벙쪄있던 한국남자들은 내가 좀 무시하고 참으면 좋을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한두번은 물론 세네번까지도 참는다. 대여섯번까지 참으라는 건 너무한다. 내가 억지를 부려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그들도 그들의 무례함과 폭력적인 해맑음을 알아야한다.

나는 집으로 가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루시에게 전화를 했다. 하루를 이런 쓰레기같은 사건으로 마무리짓고싶지 않았다. 마침 근처에 있던 루시와 만나 술집에 갔다. 나는 이 이야기를 짧게 전달하고, 잠시 후에 한숨을 푹 쉬었는데 루시의 앞머리가 날려 루시가 웃었다. 루시는 내게 잘 나왔어.” 그렇게 말해주었다. 

점잖은 중년 남성에게 카톡이 왔다. “속이 많이 상한다.. 나중에 만나서 얘기하면 좋겠어..”라는 내용이었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이 카톡은 나를 나무라기 위함이라고 7할 이상의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게 너무 화가 나고 서러워서 이 사람을 비롯하여 몇 안되는 주소록과 페이스북 친구들을 대량 삭제했다. 이런 말 하기 자존심 상하지만, 나는 이 일로 정말 상처받았다. 아무도 내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도 내 분노에 공감하지 못한다. 최소한 그 곳의 사람들은 그랬다. 그곳은 사실 글쓰기 모임이었는데, 곧 잡지를 기획한다. 나는 글쓰기 모임 카페에 올렸던 내 글들을 모조리 삭제했다. 내 언어와 내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는 것이 께름칙했다. 그 작은 우물에서 칭찬받았던 내 글들이 없어져 그들이 아쉬워하길 바랐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좌절한 여성들이 자리를 비키고 이 세상에서 사라져왔어도 망할 세상이 잘 굴러갔듯이. 나 하나 원래 안 나오던 분노 많은 메갈 한 명의 글 다 사라졌어도 그 모임은 그냥 굴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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