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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람

아진_ 2017. 11. 9. 13:59

 새로 바꾼 약이 내게 좀 세다. 이미 이전에 복용했다가 일상에 지장을 줬던 과거가 있어서 적은 양만 처방을 받았는데도 세다. 버스를 타고 출근중인 지금까지도 기운이 없어서 음악을 듣다가 이어폰을 뺐다. 음악 소리 마저 성가실만큼 세다. 오늘 저녁에는 새로 추가한 약을 빼고 먹고, 그 약은 버려야겠다. 전에 먹던 저녁약 몇 포가 남았으니 새로 추가된게 뭐였는지 확인을 하고, 남은 약은 다 버려야지.

 인적이 드문 길을 지나 버스를 타러 가는데 외국인 노동자로 보이는 사람을 지나쳤다. ‘아, 외국인 노동자.’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전에 페이스북에 학교에서 원어민 교사를 담당하고있는 백인 사람이 ‘외노자의 삶’이라고 올렸던 글이 나쁘다는 생각을 했다. 외국인이고, 노동자인 것은 맞지만 언어의 사회적인 맥락에서 “외국인 노동자”는 아니니까. 언어를 유머의 소재로 뺏어가서는 안된다. 그리고 내가 지나친 외국인 노동자가 나보다 약자라는 생각을 했다. 내게는 불행을 줄 세우는 나쁜 버릇이 있다. 그제는 이게 왜 나쁜가 고민했다. 남의 불행의 무게는 내가 알 수 없다. 내가 지나친 그 사람의 삶도 당연히 나는 모른다. 외국인 노동자의 삶이 나의 삶보다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 것도, 그 사람이 외국인 노동자라고 생각한 것도 무례했다. 단순히 외모를 보고 판단했던거니까. 우리 동네는 부루주아가 방문하거나 생활하지 않을 동네이기는 하지만, 그 판단은 단순히 외모에서 시작된 거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크고 뚜렷한 눈코입. 그게 내가 판단한 이유의 전부였다. 그 사람은 부자 나라에서 온 부자이거나, 가난한 나라에서 온 부자이거나, 부자 나라에서 온 가난한 사람이거나. 어떤 삶을 살았을지 모른다. 그냥 지나친 사람일 뿐이다. 타인의 삶을 상상해보는 것도 구경거리로 소비하는거라서 무례하다. 나보다 더 약자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나는 끝도 없이 무례하구나. 모른다는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이렇게 힘든 일일까. 역지사지가 안되는 스스로에게 조금 실망스럽다. 내 삶을 해명해야 할 것만 같은 너무 많은 순간들에 힘들었으면서도 남의 일에 대해서는 해명을 요구하는 생각을 한다. 나 쁘 다. ☹️

 나보다 더 약자라고 생각되던 특정 사람들을 어떻게 표현하고 설명할까 고민했다. ‘어떤 부류’나 ‘뫄뫄틱한’같은 말을 떠올렸다가 버렸다. 그냥 사람이라고 말하면 되는 일이었다. 트위터에서 내가 가장 많이 쓴 단어에는 몇 년 째 ‘사람들’이라는 단어가 끼어있다. 이게 사람들의 시선을 왕왕 의식한다는 의미인 것 같아서 늘 마음에 안들었고, ‘인간’이라는 단어로 대체하기라도 하곤 했었다. 어쩌면 이 고민은 틀린 방향을 가리키고있었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구경거리로 소비하는 거 였다. 남들을 상상으로나마 구경하기 위함이었다. 구경하는 것은 곧 나와 상관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기때문에, ‘사람들은’이라고 말하며 나의 문제들도 상관 없는 일로 만들고싶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단 하나 좋게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 그래도 그들은 언제나 내게 사람들이다. 개인과 개인의 불행을 줄세우는 짓은 이제야 그만둘 수 있을 것 같다. 누구의 삶도 나보다 더 불행하거나 행복할 수 있지만 어차피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니까. 한 명의 사람을 약자 타이틀로 퉁쳐 내 불행과 견주는 짓도 그만둘 수 있겠다. 다만 불행을 줄 세우는 것이 필요한 상황도 있을텐데, 타인의 간절함이 후려쳐졌을 때나 간절함을 호소해야만 하는 순간들이겠지.

 지금 약기운에 너무 무기력해서 글을 다시 읽고 비문을 최대한 수정하는 일 같은 것 못하겠다. 게다가 서비스직 인간 여자 아진은 출근길에 눈썹도 그려야하고, 입술에 색칠도 해야한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정신과에 들러 내 몸이 그 약에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했는지 설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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