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연애 끝에 문제는 나에게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걸 몰랐던 적이 있던가. 나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다.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 같다. 나는 왜 이런 사람인 걸까. 인터넷으로 회피형 애착에 대한 글들을 찾아 모조리 읽어보았다. 혼자가 되는 것이 너무 당연한 사람. 나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따듯한 소이라떼 한 잔을 가지고 자리에 앉았다. 너무 뜨거워서 조금 기다렸다가 마시려고 한다. 뜨거운 소이라떼가 식을 때를 너무 오래 기다린다면 싱거운 느낌의 차갑거나 미지근한 소이라떼를 마시게 될 것이다. 다만 인간관계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더 식히고 표현합시다' 하다가 완전히 식어버려 표현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사람을 향한 열정이며 애정이 제아무리 소중한 것이..
순이는 학교가 끝나면 늘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할머니 떡볶이’에서는 순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1인분이 2천원이다. 떡볶이 할머니는 고추장보다 케첩을 많이 넣고 떡볶이를 만들었다. 떡볶이 1인분에 오뎅 두 개가 순이의 저녁식사였다. 순이는 아빠랑 단 둘이서만 살았는데, 순이 아빠는 밖에서 저녁밥에 막걸리까지 잡숫고 집에 오셨다. “이걸로 떡볶이도 사 먹고 오뎅도 사 먹어라.” 그렇게 말하며 순이에게 매일 주어지는 5천원권 한 장은 어린 나이에 큰 돈일 수도 있었지만, 준비물을 사려면 턱없이 모자란 돈이었다. “아빠. 서예 세트를 사야 하는데 만 오천원이래요.” 순이는 술에 취한 아빠의 이상한 표정이 무서워 공손하게 말했다. 순이 아빠는 순이에게 만 오천원의 돈이 아니라 한 시간 반짜리 옛날 얘기를 꺼냈다..
따듯한 소바차를 한 모금 홀짝였다. 당신이 내 안에 번져나가는 듯한 따스함을 느낀다. 따듯하다, 라는 단어를 되뇌이며 눈을 감았다. 소바차를 뜨거운물로 우려낸 것을 담은 이 컵과 당신이 따듯하다. 당신이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러준 그 날, 나는 집으로 돌아가며 사랑에 빠졌다. 내 이름을 부르던 당신의 목소리를 몇 번씩 되뇌이며 미소지었다. 미소라기엔 참 큰 웃음이었다. 당신은 나를 웃게한다. 이제는 당신의 목소리만 들어도 웃음이 난다. 나는 그냥 당신의 말을 듣고 웃기만 했다. 당신은 나를 재미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겠지. 사실 당신은 나에 대해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생각 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영영 날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사랑에 잘 빠진다 뿐 사랑을 하는 것과 쟁취하는 것에는 서툴다. 웃을 수 있..
금쪽같은 내 인생을 다 줄 수 있는 소네치카에게. 네가 내게 여전히 사랑하느냐 물었을 때 당연하다고 대답했지만, 사실 더이상 널 사랑하지 않아. 너는 내게 너무 아픈 존재였고, 나는 그런 아픔에 사랑이라 이름붙이는 것이 싫어. 나의 소네치카, 아무도 널 사랑하지 않아. 너는 너무 많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해. 너는 사실은 없는게 나을지도 몰라. 강한 너는 내가 이런 말을 해도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고있겠지. 실제로 '사실'인 것은 네가 살고있는 이 세상이 없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걸. 이 세상엔 그런 나쁜 인간들 천지야. 너는 그런 나쁜 인간들 사이에서,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고있어. 장하다, 소네치카. 내 소네치카야, 이미 내것인 너를 난 사랑하지 않아. 너를 갖지못했던 때의 나를 기억하니? 어찌나 너를..
"랏밴뮤 듣자." "그게 뭐야?" "랏도의 밴드 뮤직." 그렇게 말하고 나는 어플을 실행했다. 하헌진의 '죄송합니다.'가 방송되고있었다. 띠잉띵 기타 소리가 좋아서 가만히 있었다. 네게 아무 설명도 해주지 않고, 조금 취해서 달아오른 얼굴을 차가운 손으로 식히며 기타 소리를 들었다. 창 밖을 보니 특별할 것 하나 없어봬는 골목이 예쁘게 느껴졌다. 어쨌거나 빛은 반짝반짝 한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시고, 사랑에 빠지고, 사랑에서 빠져나오고있지. 엎치락 뒷치락 추해지는 순간들이 많지만, 그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취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서러운 삶에 아름다울 것이 뭐가 있나. 더러운 꼴들을 잊고자 우리는 사랑에 빠지고 서로에 집착하며 사는 것 아닐까. 만나고 헤어지는 그 모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