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소바차를 한 모금 홀짝였다. 당신이 내 안에 번져나가는 듯한 따스함을 느낀다. 따듯하다, 라는 단어를 되뇌이며 눈을 감았다. 소바차를 뜨거운물로 우려낸 것을 담은 이 컵과 당신이 따듯하다. 당신이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러준 그 날, 나는 집으로 돌아가며 사랑에 빠졌다. 내 이름을 부르던 당신의 목소리를 몇 번씩 되뇌이며 미소지었다. 미소라기엔 참 큰 웃음이었다. 당신은 나를 웃게한다. 이제는 당신의 목소리만 들어도 웃음이 난다. 나는 그냥 당신의 말을 듣고 웃기만 했다. 당신은 나를 재미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겠지. 사실 당신은 나에 대해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생각 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영영 날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사랑에 잘 빠진다 뿐 사랑을 하는 것과 쟁취하는 것에는 서툴다. 웃을 수 있..
금쪽같은 내 인생을 다 줄 수 있는 소네치카에게. 네가 내게 여전히 사랑하느냐 물었을 때 당연하다고 대답했지만, 사실 더이상 널 사랑하지 않아. 너는 내게 너무 아픈 존재였고, 나는 그런 아픔에 사랑이라 이름붙이는 것이 싫어. 나의 소네치카, 아무도 널 사랑하지 않아. 너는 너무 많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해. 너는 사실은 없는게 나을지도 몰라. 강한 너는 내가 이런 말을 해도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고있겠지. 실제로 '사실'인 것은 네가 살고있는 이 세상이 없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걸. 이 세상엔 그런 나쁜 인간들 천지야. 너는 그런 나쁜 인간들 사이에서,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고있어. 장하다, 소네치카. 내 소네치카야, 이미 내것인 너를 난 사랑하지 않아. 너를 갖지못했던 때의 나를 기억하니? 어찌나 너를..
주치와 나누었던 상담에 대해 말하려 한다. 그 상담이 무척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의식 과잉이다. 이 말의 정확한 정의도 모르면서 내게 찰떡같이 들어맞는 말이라 생각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기, 모든 순간에 내가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 깨닫기, 자의식 과잉 벗어나고 행복한 삶 살자... 라는 내용의 글이 화이트 보드에 적혀있는 유명한 이미지가 있지. 볼 때 마다 저장해서 아마 사진첩에 그 이미지가 세 장 정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 그래야한다.라는 생각으로 몇 번 저장했던 것인데 어느 순간에는 그러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고싶고, 매 순간 내가 중요했으면 좋겠다. 왜 그럼 안돼?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을거라는 내 생각을 주치에게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
스무살 때 썼던 내 일기를 봤다. 그 때의 나는 양 극단에 대해 이야기했다.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사이와 침묵이 두려워서 쉴 새 없이 떠드는 사이. 그 때의 나는 내 모든 인간관계가 침묵이 어색하지 않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스스로를 음악 중독이라 진단하고 이어폰을 일부러 집에 두고 외출하기도 했다. 어색한 사람과 함께 있을 적에는 그 사람이 아니라 어색한 공기 그 자체에 익숙해지기로 했다. 그 때의 나는... 뭐라 한마디로 말하기 겁나는데, 참 빡시게 살았던 것 같다. 혼자 참 빡셨다. 그 무렵에 복근 운동도 했고, 온갖 기록 어플들로 내가 갔던 곳, 돈 쓴 것, 먹은 것 등을 기록했다. 이 시기 즈음에 수면 시간 기록했던 것도 있고, 더 자세하게 수면 주기를 기록하는 어플도 사용했었다. 혼자 나를 돌보..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의 이라부 이치로 시리즈 중 화재를 두려워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가스 꼭지를 제대로 잠갔는지 출근길에 세네번씩 되돌아가서 확인하는 사람이었다. 사실은 자기 책임이 아닌 화재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오늘의 내가 그 사람이랑 닮았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나와 그 사람 중 오직 나만 비겁한 것 같다. 일을 제대로 못해서 울적한 나는 비겁한 사람이다. 내 책임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태평스러우면서 내 책임 안 쪽의 일만 걱정하는 내가 비겁하다. 게다가 내가 걱정하는 건 내 일상의 모든 책임들인데, 그렇다고 그 책임들을 잘 해내고 있는 것도 아니니 너무 한심스럽다. :’( 더 잘하고싶다. 일상을 더 잘 살아내고싶다. 더 강하게, 더 꼼꼼하게. 내 삶을 다 챙겨주는..
https://youtu.be/nSDgHBxUbVQ 설명과 영상을 보고 조금 울었다. 이런 거 보면 슬프다. 사랑받는 아기의 순간은 내게도 있었는데, 그게 다 거짓말같다. 다 진실이었대도 시간이 지나 이렇게 사라질 일이라면 다 무슨 소용일까 싶고. 그렇다고 영원히 진행되는 사랑만 의미있냐 하면 그것도 아닌데. 가족이 있을 때의 나와 가족이 없을 때의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닌데, 나는 계속 둘을 분리하려고 했다. 그래서 가족들과 연관된 무엇들은 이제 없는 일인냥 잘도 치워버렸다. 내가 가족들과 투닥거렸던 시간도, 상처받고 얻어맞았던 시간도, 사랑받았던 시간도 모두 여기에 있다. 역겹지만, 마음까지 옭아메는 가족제도 중심의 사회에서 살면 그 시간들을 계속 치울 수 없다. 영상을 계속 보다보면 아이에서 어른..
J가 내게 정신병 나으려고 어떤 노력을 하고있냐 물었다. 그냥 질문이었다. 나는 병원에 다니고있다고 대답했다. J는 내게, 그런거 말고 너 혼자서는 무엇을 하느냐 물었다. 나는 혼자 무엇을 하는 것이 이제는 지긋지긋 하다고 대답했다. 너무 많은 것들을 혼자서 해야 했다. 거의 정신이 처음 들었던 것 같은 12살 때 부터 내 인생은 오롯이 내 것이었다. 아무도 내 인생을 설계해주지 않았다. 12살의 내게 그 자유는 너무 과분했고, 나는 많은 것들을 망쳤다. 내 인생을 이끌어줄 것들이 필요했다. 14살 때는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처음 갔던 대규모 복음 캠프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마음으로 공부하겠노라 다짐했다. 수요예배와 금요철야예배에 매주 참여했다. 가족들에게 수학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에 ..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글 카테고리 하나를 추가하려고 노트북을 켰다. 새벽 다섯시 반이다. 보안카드를 잃어버렸다. 퇴근하며 탔던 택시의 영수증을 회사에 제출하기 위해 받았었다. 영수증에 택시기사님의 휴대폰 번호가 적혀있었다. 분명히 택시에 두고내렸다. 새벽 1시에 탄 택시였어도, 전화를 걸기엔 벌써 새벽 4시였다. 서비스직으로서의 공손함을 끌어올려 카드 흘린 것 없는가 문자를 보냈다. 없다고 했다. 답장 감사하다고, 수고하시라고 답장했다. 요즈음 다시 주눅들어 산다. 나는 뭐가 그리 무서울까. 매일같이 듣는 랏밴뮤의 매일같이 참여하는 채팅방에서 난 버릇처럼 '내 잘못'이나 '나 자신도 세상도 용서'같은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무도 반응해주지 않았더라면 몰랐을텐데, "아진님도 무죄 ! 세상도 무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