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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나를 빼놓고도 잘 돌아간다는 것이 잘 믿기지 않는다. 내가 가지 못한 길을 누군가는 가고, 내가 포기한 일을 누군가는 해내고있고,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누군가는 갖고있다는 것이 잘 믿기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의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고있는데, 나는 여기에 멈춰서 누가 근황을 물을 때마다 "팽팽 놀아요."라고 대답한다.

일요일마다 커피를 두 잔 넘게 마시고 밤을 새 몽롱한 월요일을 맞이하는 것이 이제는 루틴이 됐다. 밤을 새는 것은 우울감을 반짝 개선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글을 봤던 것 같다. 어젯밤에는 오랜만에 밤산책도 다녀왔다. 아침 9시가 되자마자 주민센터 무인기기에 가서 검정고시 성적 증명서를 출력해 방통대 성남지점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LH 재계약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8월까지 준비하기로 했던 돈을 아직도 준비하지 못했냐 묻는다. 나는 '그것도 그런데'라고 얼버무리며 묻고싶던 것을 물었다. 돈을 지원받을 방법을 찾았는데, 계약서가 필요하다고 설명하니 계약서는 돈이 모두 입금된 후에 쓸 수 있는 것이라며 지원받을 곳에 양해를 구하란다. 밤도 샜겠다 집 문제가 너무 어렵고 도망치고싶은 나는 금방 말을 잃었다. 간신히 "아..."하고 다시 입을 열어 "그게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요." 하고 말했다. 담당자는 8월까지 돈이 준비되어야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돈 문제는 이쪽으로 전화를 주면 된다고 설명했다. 네 알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은 내가 사실 할 수 있는 말, 속에서부터 터져나오고 머릿속을 빙빙 멤도는 말은 앞의 말이었다. "그게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요." 문법에 맞는지도 모르겠는 말, 아무튼 안된다는 말인데 아쉬운 입장이니 어떻게든 길게 늘어뜨려 본 말. 말을 길게 늘이면 꼭 그 말의 본 뜻을 감출 수 있기라도 할 듯 싶다. 잘못한 사람이 혼나면서 괜히 "그게 아니고"로 말을 시작하는 것도 그런걸까. 말을 길게 늘여서 감추고싶은 진실을 어떻게든 포장해보려는 거 아닐까. 

아무튼 전화를 끊고 검정고시 성적 증명서를 방통대 성남지점에 제출했다. 원래 전형료 결제를 먼저 하고 부속서류 제출인 것을, 전형료 결제를 못한 상태로 무작정 온 것이라 혹여 나를 돌려보낼까 걱정했는데 비치되어있는 컴퓨터로 전형료를 결제하면 된다고해서 그렇게 했다. 걱정과 달리 무사히 접수했으니 안심하고 합격만 바라면 될 일인데, 그럴 수 없었다. 집 문제가 해결이 안되면 나는 어떻게 되는걸까. 주거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대체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일단은 주민센터에 지원받을 수 있다 했던 곳에, 가계약서를 제출해도 괜찮은지 물어보기로 했다. 7월 15일부터 접수를 받는 저신용 청년 대상 대출도 있다. 이게 다 안되면 ... 나는 그렇다치고 우리집 고양이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미 가족이 한 번 해체되는 경험을 했는데 1인2묘 가족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또 해체될 수도 있는걸까. 내게 그런 불행이 또 일어날 수도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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