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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싶다. 뭘 어쩌자는건지. 심리상담 중에 내가 지금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이 흐릿한 상태라는 걸 알았다. 지금까지는? 아마도, 원하는 게 확실했던 것 같다. 내 에니어그램 유형인 7w8에 대한 설명 중에도 확실한 상태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명확한 것. 뚜렷한 것. 세상은 흑백이 아닌 회색들로 이루어져있다지만, 적어도 나 자신과 내가 보는 것들은 흑백으로 분리해야 안정감이 느껴졌던 것 같다. 나 자신과 내가 보는 것들은 곧 내가 사는 세상의 전부인 걸 안다. 아무튼 그랬던 것 같다.

"같다."라는 표현을 자꾸만 쓰는 것도 기분이 안 좋다. 하지만 아무것도 제대로 기억나질 않는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원래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요즈음의 나는, 관계를 끊는 게 맞다고 판단되는 사람에게 의지하며 스스로 사용해야하는 의지는 최소화 하여 무기력하게 지내고있다. 그런 내가 너무 싫다. 싫어진 관계들, 끊고 싶었거나 끊는 게 맞다고 판단했던 관계들은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결국 끊어졌었다. 이렇게까지 끝이 안보이면서도 지치는 관계는 처음이다. 그런데 가족들과 연락을 못 한 지 5년이 넘어가는 지금 이 시점에 내 곁에서 결코 떠나지 않을듯이 보이는 사람이 있는 것은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르겠다.

지금의 상태가 썩 만족스럽지 않다. 포기할까 하면 더 깊고 긴 불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두렵다. 이 쯤 했으면 더 한 일은 없겠다 생각이 들었을 때에도 더한 일이 있었다. 내가 살아가는 길은 오솔길도 아니고,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도 아니고, 늪인 것만 같다. 포기하지 않으려 하면, 너무 무력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하찮게 느껴지는 동시에 너무 버겁다.

이런 깊은 우울감에 대한 정석적인 해결법은 아마도 마음을 비우는 명상, 육체적인 움직임을 통해 역시 마음을 비울 수 있는 여러 운동들, 산책같은 것이리라. 머릿속에 스쳐가는 여러 공상들을 붙잡지 않고 흘러가게 두는 명상을 할 자신도 없고 운동의 힘든 구간을 견딜 수 있을 거라는 자신도 없다마는. 무엇보다 나는 마음을 비우는 것을 별로 원하지 않는다. 엉킨 실타래같고 모든걸 같은 색으로 만드는 진흙같은 내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싶다. 무엇이 생각들을 엉키게 했는지, 혹시 내가 머릿속에 계속 같은 색을 붓고있는 것인지, 시간이 흐르며 내 마음과 생각은 어떻게 변해왔는지 혹은 어떤 부분이 여전한지. 너무 깨끗해서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유리창, 유리문 마냥 투명하게 내 마음을 닦아보고싶다. 혹시 내가 나 자신에 대해 그만 생각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사실은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도 두려워 밖에 나가거나 사람들 만나기가 주저될 때가 많다. 아마도 그러한 이유로 병원도 두달 째 가지 않다가 겨우 야간 병원을 찾아 퇴근 후에 들렀다.

항우울 기능이 있는 조울증 약이라 설명해준 '아빌리파이'를 처방받았고, 처음 먹은 어젯밤 잠은 좀 설쳤지만 오늘 기운이 조금 있어 이렇게라도 끄적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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