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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데나 고개를 파묻고 울어버리고 싶다. 밝은 모습이건, 확신에 차 있던 모습이건 껍데기일 뿐인데 그 껍데기마저 관리가 안되고 있다. 우울할 때 글이 잘 써진다고 누가 그랬지, 은유 작가님은 쓰는 고통보다 안 쓰는 고통이 더 강할 때만이 글을 쓸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안 쓰는 고통 따위 모르는 사람이면서도, 어쩌면 안 쓰는 고통을 알기 때문에 지금 블로그에라도 끄적이고 있나. 무언가 내 안에서 끄집어내고 싶다. 거대한 우울을, 거대한 분노를, 억울함을. 더럽고 추악한 뭔가를 꺼내는, 피지를 짜내는 듯 더러우면서도 짜릿한 경험 한 번 이면 모든 게 해결될 것만 같다. 모든 문제가 그렇게 한 방으로 해결되길 기대한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삶은 한 방과 다른 한 방 사이의 무엇이 아니라 하루하루 쌓이는 나날들의 합이다. 나는 한 방과 한 방 사이를 헤매는 사람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괴로워하는 정신병자다. 이번에 병원에 가면 아침 약에 항우울제를 추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항우울제 같은 약을 쓰면 기분이 천장을 뚫을 수 있기 때문에 안된다고 했다. 조울증이라서 그런 거냐 물었더니 맞다고 한다. 저녁 약 종류를 세 개로 줄이고 기분조절제의 용량을 높였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의사쌤은 매번 "좀 어때요?"라고 묻는다. 나는 너무 안 좋다고 말하며 진료실 의자에 앉았다. 하루 종일 잠을 자요. 죽고 싶어요. 온 세상 모든 사람들과 연결이 끊긴 듯해요. 재미있는 모임에도 가봤지만 마찬가지예요. 사람들이 즐거워 보여도 저는 즐겁지 않아요. 

그건 정말 외롭다. 사람들이 즐거워하고있다는걸 알아채는 동시에 나는 즐겁지 않다는 걸 알아채는 것. 나는 이 사람들과 다른 방법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아는 것. 후에 언젠가는 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놀 수도 있겠지만 당장의 나는 어떤 발버둥을 쳐도 소용이 없을 거라는 것. 

이렇게 우울한 이유가 그럼 외로움때문이었냐 하면 그건 너무 자존심이 상한다. 나는 인간들이 싫어요 포지션에 나를 두고 불만이 가득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이나 좋아하는 사람들 또한 많지만, 외롭다는 감각은 마치 "나는 누구라도 사람이 필요해!"라는 외침 같다. 김사월 님의 노래 가사를 빌려와 본다. (아 진정 누군가라도 내 곁에 지금 있었더라면. 사실 그런 누군가 있어도 지금 나에겐 별 방법도 없으면서.) 얼마 전 읽다 만 책 '똑똑한 사람들은 왜 행복하지 못할까?' 중에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을수록 더 행복하다는 당연한 연구결과가 실려있었다. 나는 인간들이 싫어요 포지션에 나를 두면서 '당신들 역시 나를 싫어하겠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포지션에 역시 나를 두었기 때문에, "누구라도 필요해"를 선언하기 위해서는 찐덕하게 붙어있던 저 포지션으로부터의 이동이 필요하다. 정말 누구라도 필요하다면, 그건 이전에 싫어했던 사람이어도 상관이 없어야 한다. 그게 너무 자존심이 상한다. 싫어하는 사람들이라고 꼭 싸운 것도 아니고, 표면적으로는 아무 문제없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굳이 내가 고백하지만 않는다면 내가 싫어했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를 수 있는 일인데도 자존심이 상한다. 자존심이 상한다는 것이 내게는 왜 그리 눈물 나는 일인지 모르겠다. 나는 애초에 자존심이 상하는 게 싫어서 사람들을 싫어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은 외로움에 사무치면서도 자존심이 상하는 게 싫어서 그걸 인정하기 싫다고 버티고 있다. 내게 자존심이란 대체 뭐길래. 나란 인간이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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