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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

기회

아진_ 2019. 7. 1. 01:30
내게 아직 기회가 있다는 것이 감격스럽고 두렵다. 나는 몇 번이고, 얼마든지 망칠거다.


우울증을 오랫동안 앓으면서 집에 틀어박혀 나를 고립시켰던 때는 많지만, 그 결과가 신용카드를 비롯한 각종 공과금들의 연체로 이어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처음에 다짜고짜 누워버렸을 때는, 어떻게든 될 것이니 일단 쉬자고 생각했다. 나는 서러울만큼 쉬고싶었으니까. 이미 엎질러진 상황, 몸이나 편히 쉬고 다시 생각하고싶었다. 그게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몰랐다. 상황을 망치기 직전의 한 달 이상을 나는 지각도 참 많이 했고, 기분도 꾸준히 가라앉았었다. 버스 창가에 앉아서도 내 처지를 생각하다 눈물이 펑펑 나서 한참을 울었던 적도 많다.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너무 힘들었다는게 새삼 다시 느껴지면서 나 자신을 안타까이 여기며 눈물이 터졌었다. 거의 항상 힘들었으면서 힘든 나 자신은 제발 입을 닥치기를 바랐던 나, 내게 과분하다고 생각되는 좋은 사람들에게 애정을 받았던 기억들이 차례대로 떠오르며 눈물이 막 났었다. 그 때의 눈물은 흐르는게 아니고 밀려오던거라서, 일단 막 울다가 내가 왜 우는지 생각했었다. 눈물의 이유를 생각하다보면 또 눈물이 나고, 버스를 내려야 할 때까지 계속 울었었다. 그리고 이제는 쉬고싶었었다. 나는 아픈데, 나는 정상이 아닌데, 정신과에 입원하고싶은데 그럴 수 없었다. 


오죽하면 그냥 집에 틀어박혀 컴퓨터만 붙잡고 살던 옛날이 그리웠었다. 할머니에게 연락해서 먹고싶은 것 이야기하면 할머니가 사다주던 그 때. 기운이 나면 겨우 알바를 시작해서 3개월, 5개월 쯤 하면 또 기운이 없어서 그만두고 좀 쉬다 다시 시작했던 그 때. 원하던대로 그 때와 비슷하게 두 달 가량 살았다. 먹을거 챙겨주는 할머니는 없지만 배달음식을 많이 시켜먹었다. 핸드폰 붙잡고 누워있다가 밥먹을 때만 일어났었다.


이 와중에 딱 한 사람과 연락을 했었는데 그 사람이 내 상황을 모르고 던졌던 오만가지 조언들이 이 글을 쓰면서 자꾸 생각난다. 여행을 다녀오라고 했던가, 이대로 잠수타면 영원히 후회할거라던가, 너는 살아남으려고 아빠를 탈출하지 않았냐더니 자기 말을 무시하니까 아빠를 탈출한게 믿기지 않을만큼 아기같다고 했던 것, 너가 어리긴 하구나, 구십먹은 할머니도 사는데 너가 왜 따위의 말들, 내가 설명하는 내 상태에 대해 의미부여하지 말라며 자기 맘대로 다른 이유를 말하던 것. 내가 화가 나서 당신 카톡 다 읽을 수가 없다고 그만하라고 하니, '네가 카톡을 안 읽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며 드디어 다 읽었구나 하던 말. 화가 나서 못읽겠다는데 드디어 다 읽었구나라니 무슨 말이람, 내가 답장을 보내면 몇번을 보냈다고 기어코 그 말들을 인정하지 않거나 잘못 이해하고 추측을 토대로 조언을 던졌던 사람. 내가 마지막으로 그런 사람을 의지하려고 했었다는 것이 또 절망스러웠었다. 시발 고마운건 고마운거고, 너는 너고 나는 난데. 나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내가 심리상담을 다녀왔다는 얘기를 정신과 상담으로 이해하던 사람, 내가 신이 나서 에니어그램 얘기를 꺼내면 너무 틀에 박히지 말라고 충고부터 하던 사람. 내 손목의 자해 흉터들을 보고 너는 심하지 않게 했다며 자기 흉터를 보여주던 사람. 내가 의도적으로 답장을 안하던 즈음에 자기는 힘들 때 아무도 없었다는 얘기도 막 했었는데, 미안하지만 나는 당신이 아니다. 나는 아무도 없었던 때가 없다.

 나는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절망했던 것이 아니고, 내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얼마나 지쳤는지 모르는채로 자기 의로움에 취해서 도와주려던 사람들때문에 절망했었다. 나는 죽어야하면 죽겠다 생각하는데, 내가 당연히 도움을 반가이 여기고 기대할거라 생각하는 사람들때문에 절망했었다. 아무도 나를 몰라서 절망했었다. 내가 나에 대해 설명하려면 "저는 어떤 사람입니다"로 시작할 수 없다. 이미 나에 대한 평가가 어느정도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에 대해 설명하려면 "그게 아니라"로 시작하여 계속 해명을 해야한다.


"꿈이 있어서 학교를 자퇴한게 아니라 우울증이 와서 선택권이 없었어요. 아빠가 때려서 가족들로부터 탈출한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연이 끊겼어요."


나를 통해 자기 자신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사람들을 통해 나를 봤던 적이 없다. 나는 그 사람들이 나와 얼마나 다른지만 여러 차례 본다. 왜 나같이 생각을 안하는지 답답할 때도 있고, 내가 못가진 것을 가졌음에 부러울 때도 있다. 그리고 '닮았기 때문에 해주는' 조언을 들을 때면 매번 어이가 없었다. 나는 당신이 아니다. 그 조언은 나에게 맞지도 않을 뿐더러 불쾌하기까지하다. 나를 전혀 모르는 것 같은 사람이 나를 잘 아는냥 말하는걸 들으면 인류애가 뚝뚝 깎인다. 다 자기 세상에서 산다. 나는 그 사람들을 위해 죽을 필요도 살 필요도 없다. 아무도 나를 모른다.



내가 자살을 한다면 정말 추잡스러울거다. 깨끗한 옷을 입고있지도 않을거고, 집도 난장판일거고 고양이들은 난데없이 버려졌다는 것에 울거나 두려워할거다. 나는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몇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하는 말이나 사과를 할거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내가 얼마나 억울하며 얼마나 살고싶었는지, 당신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해주면 좋겠는지 쓰겠지. 


이쯤에서 또, '너만 힘든건 아니야. 너만 그렇다고 믿는건 아니겠지?'라는 카톡이 생각이 난다. 이건 우울증을 호소할 때 지겹게 마주하는 반응 중 하나라서 이 사람이 이 말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거니와 나만 힘들든 남들 다 힘들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지도 이해가 안된다. 우울증 뇌가 이미 자살하라고 부추기고있는 와중에 남들의 존재는 나랑 비슷하든 다르든 내가 죽어야하는 이유가 된다. 오만가지 경우의 수를 다 나열해봐도 나는 다 같은 결론을 낼 수 있다. 아무튼 나는 내 상황과 나란 인간이 싫어서 죽고싶다. 남들이 잘 살든 못 살든 남들의 문제다.



원래는 내게 어떤 기회가 있는지, 지난 며칠동안은 얼마나 굶고 뭘 먹고 살아남았는지 쓰려고 했었다. 근데 께름칙한 기분이 든다.

서울대학병원 정신과에 입원했을 때, 의사가 말이 안통해서 급하게 퇴원을 했었다. 외래 진료는 교수랑 하는거였고, 뭐가 말이 안통한다 느꼈는지도 말했었다. 그 의사 앞에서도 당신이 마음에 안드는 티를 팍팍 냈었는데 언젠가 외래 진료를 대기하던 나를 보고 얼굴 좋아졌다며 아는 척을 했을 때같은 께름칙함. 나는 내 기분을 망쳐놓고 내 안녕을 바라는 사람들이 께름칙하다. 끝까지 자기 머릿속에서만 사는 사람같아서. 그 머릿속의 재료로 현실의 내가 이용당하는 것 같아서 께름칙하다. 내게 절연 통보를 했던 인균이는 내가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었을 때 태연한 목소리로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었다. 인균아 나는 네가 죽기를 바라. 내가 절망했던만큼 절망하길 바라. 내게 저질렀던 실수를 영원히 깨닫지 못하고 계속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다가 지옥에서 후회하길 바라. 


나는 너무 화가 난다. 열살 즈음에 학교에서 단체로 운동장을 달리다가 내 순서를 벗어나서 자리를 옮기려고 하자 "네가 왜 여기있냐" 말하며 나를 밀었던 아이, 교과서를 안가져와서 교과서와 내용이 똑같은 자습서를 펴둔 것을 혼내며 수업시간에 자습서를 보면 되겠냐던 중학생 때의 국사 선생님, "나는 아빠도 너도 그냥 포기할래" 라고 말하며 저를 때리던 아빠와 내 인생 휘청이는 나를 싸잡아 포기한다 말한 고등학생 때의 친구, 내 상황을 설명한걸 가지고 너무 많은걸 바라는 것 같다고 딱 잘라 말한 자살 예방 센터의 직원. 나를 사랑했으면서 나를 그렇게 때린 아빠, 아무 설명도 없이 나를 떠나버린 할머니. 나를 차단했던 고모, 아버지도 많이 반성하고있다는 말을 반복하던 수사관. 계속 생각이 나고, 생각이 날 때 마다 너무 화사 나서 가슴에 불이 나고 서러워서 눈물이 나는데 그 사람들한테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 나만 여기에 있다. 기어코 그 기억들을 안고, 옛날 일로 차마 넘기지 못하고, 계속 곱씹고 괴로워하면서 여기에 있다. 그 기억들과 함께 사라지고싶다. 너무 죽고싶다. 


와중에 좋은 일들도 많이 있었기에 그래도 살아남은거지만 아무렴 다 됐다 싶을만큼 너무 지쳤다. 대책 없는 휴식으로 카드빚도 생겼고 전기세 가스비 통신비 등 계속 연체되는 중이니 너무 좋은 시기다. 내가 좋아하던 내 모습들이 아직도 내 안에 있는데, 싫은 나랑 같이 죽을 수 밖에 없다. 


근데 트친이 생일 축하한다고 기프티콘을 보내줬다. 트위터에 생일이라고 말도 안했는데. 또 다른 사람은 걱정하며 디엠을 보내더니 밥을 사주고싶다 했다. 당장 먹을거는 있냐며 기프티콘도 보내줬다. 또 또 다른 사람도 실례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며 기프티콘을 보내줬다. 당장 집에 굴러다니는 잔돈도 너무 소중한 지금 내 상황에, 이런 호의가 얼마나 눈물이 나는지 모른다. 내가 혹시 살아도 된다는 뜻일까봐 눈물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죽을 것 같아서 눈물이 난다. 


몇 년 전에 정신과에서 이런 말들을 했던게 기억이 난다. 집 밖을 나가서 버스 정류장까지 걷는 것, 사람들을 만나서 인사를 하는 것, 그런 사소한 것들이 너무 힘들다고. 지금의 나도 그렇다. 근데 나는 지금 1인 가구라서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답이 없는데 저 지경이라 집에 처박혀있으니 당장 뭐라도 해야한다. 그러니까 죽어야한다. 내가 살기로 한다면 극복해야할 상처가 너무 많다. 극복해야할 내 성격이 너무 많다. 버려야 할 고집도 자존심도 너무 많다. 왜 그렇게까지 살아야하나. 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일단 살아볼 수 있는 그런 만만한 난이도가 아니다. 너무 힘들다. 너무 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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