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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

끝내

아진_ 2019. 6. 28. 11:12
   

냉장고에서 유통기한 지난 요플레를 꺼내 먹은 것이 3일 전이었다. 실수로 한 번 코드를 뽑았다가 다시 꽂은 냉장고에 있던 요플레였다. 날짜가 어디에 적혀있는지 확인하지도 않았다. 일단 입 안에 넣어보니 괜찮았다. 먹으면서 상한듯한 시큼함이 조금 느껴졌고, 배가 아팠지만 입 안에 넣는걸 멈출 수가 없었다. 그 다음날에는 통장에 남은 돈으로 간짜장이랑 군만두를 주문했다. 어차피 마지막 식사였으므로. 나는 나를 살릴 계획이 없으므로 본능이 시키는대로 입안에 다 쑤셔넣었다. 배가 불렀지만 멈추지 않았다. 싹싹 긁어 입 안에 넣고 그릇을 내놨다. 그리고 어제는 물만 마셨다. 칩거 생활을 지속하면서 시간이 무섭게도 빠르다고 생각했었는데 배가 고프니 하루가 느리게 간다. 물을 마시며 허기를 달랬다. 의외로 버틸만한 것 같기도했다. 오늘 아침에는 잠이 깨자마자 불쾌했다. 괜히 내 팔뚝이 시꺼매보이고 벌써 죽어가는 느낌이었다. 눈을 뜨기 싫었지만 감고있는 것도 불쾌했다. 꿈 속의 내용을 회상하며 나름대로의 해석을 갖다 붙이는것이 칩거생활의 재미중 하나였는데 꿈도 기억이 안난다. 분명 꾸긴 꿨는데. 그러고보니 어제 가족들 생각에 서러워서 또 눈물을 찔찔 짰다.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지. 내가 잘못한 사람이 맞더라도, 혼내거나 고치려 든 것이 아니라 버렸다는 것이 억울하고 서러운데 나는 그 당시에 잘못한 사람이 아니고 얻어맞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걸 가지고 어떤 사람은 때리는 아빠를 "탈출"했다고 칭하니 나는 어디에서도 설명되지 못하는 인간이다. 나를 위한 사람도 나를 위한 세상도 없다.

연체된 신용카드가 완전히 정지될거라는 문자를 받고, 휴대폰 소액결제의 한도가 더는 남지 않았다는 문자를 받고, 모든 통장에 잔고가 0원이 된 것을 확인하고 나는 기대했었다. 칩거생활 내내 배달음식을 열심히 시켜먹어 살이 찌기까지 한 내가 배가 고프면 아마 외출을 할거라고 말이다. 집을 뒤지면 잔돈이라도 있고, 돈 버는 어플에 만원 정도의 포인트가 있으니 일단 내가 밖에 나갈 수만 있다면 허기를 달랠 수는 있었다. 그렇게 배고파서 외출을 하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나는 내 정신병을 배부르고 등 따숴서 앓는 소리 하는거라 비하하곤 했었다. 그러니까 배가 고프면 정신병이고 뭐고 밖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아무 대비도 하지 않았다. 눈곱만큼이라도 기회가 있을 때 더 노력하지 않았다. 그런데 못나가겠다. 그거 배 채운다고 뭐 변화가 있을 것도 아니고. 편의점에도 사람이 서있는데 그 사람에게 내 존재를 보이는 것이 싫다. 지금의 내가 그만큼 싫다. 그런데 당신은 이걸 이해하지 못했지.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에게 나를 보이느니 집 안에서 죽고싶은 내 심정은 아무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겠지만, 나는 이제야 내가 핑계를 대던게 아니라고 조금 안심이 된다. 내 두려움과 무기력은 한심한 핑계가 아니라 완전한 무능력의 증거였다. 나는 아무것도 못하겠는 와중에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나를 살리기 위해 애썼다. 그래 씨발, 나는 못하니까 안했던거다. 그거 하나를 못믿어줘서 나가라고 백번쯤 말했을 당신은 내가 죽기까지 마지막으로 원망할 사람이다. 그만큼 나빠서는 아니고, 당신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나이가 몇살이든  당신이 나와 어떤 공통점을 가졌든 당신은 나를 모른다. 누구도 타인을 그만큼 잘 알 수는 없다. 네가 뭘 할 수 있고 없는지, 네가 어떤 사람인지 확신해서는 안된다.

내가 누운 자리 근처에는 이전에 배달시켜먹었던 흔적들이 잔뜩 쌓여있다. 한 번은 조각 케이크도 시켜먹었었는데, 부스러기가 남아있었다. 입에다 털어넣고, 종이에 남은 것 마저 입에 갖다대니 침이 줄줄 나왔다. 그거 부스러기로 속이 자극돼서 배가 너무 고파졌다. 냉장고에는 아직 뭔가 더 있긴 하다. 큰 맥주캔 두개랑 작은 병맥주 하나, 소주, 조금 마신 와인. 그리고 유통기한이 6월 8일까지였던 두유가 있었다. 요플레도 먹을만했으니 이건 어떤지 보자. 하고 한모금 마시니 너무 맛있었다. 이것도 냉장고가 하루 꺼져있을 적에 이미 개봉된 채로 있던 터라 상했을 것 같긴 한데, 탈이 나는 느낌이 들었지만서도 배가 채워지는게 좋아서 계속 마셨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누웠다. 먹은게 딱히 없는 상태에서 몸을 일으키면 몸이 조금씩 아프다. 앉아있거나 서있기만해도 어지럽고 그렇다.

유투브에 자살을 검색해보니 한국 자살 예방 협회 1393의 번호가 떴다. 얼마전 트위터 친구가 핫라인 중 가장 좋다고 추천했던 그 번호였다. 여기다 전화를 해볼까 한 번 다이얼을 눌렀다가, 아니 내가 자살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전화해서 무슨 말을 해. 마음은 좀 풀릴 수 있겠지만 상황이 변하는 것도 아닌데. 싶어서 관뒀다. 사실 이런 전화를 통해 어딘가로 연계해주거나 적당한 조언으로 내가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해 줄 수도 있는거지만, 나는 당장 자살하려는 상태가 아니었고, 모르는 사람에게 일단 얘기를 줄줄이 늘어놓을만큼 감정이 활발한 상태도 아니었다. 그리고 오늘, 지금이다.

나는 뭐가 잘났다고 몇 되지도 않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댕강댕강 끊어왔다. 나처럼 예민하고 이기적인 인간에게도 고립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가끔 몇 몇 사람들 얼굴이 떠오르지만 나는 연락할 수 없다. 그들은 내가 못하는걸 할 수 있다고 말할거고, 나는 못한다는 말만 반복하다가 스스로의 유별난 무능력과 한심스러움에 당장 죽고싶어질거다. 죽는건 지금 이 상황에 그리 나쁜 선택이 아니지만, 당장 죽어야할 것 같은 그 감정이 싫다. 나는 싫은 것들로부터 열심히 도망친다. 이제 나 자신으로부터만 도망치면 되는데, 그 과정에 내가 느낄 고통 또한 너무 싫으니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 혼자가 차라리 낫겠다 생각이 들 만큼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말을 반복하던, 내 삶의 많은 사람들이 밉다. 그 미운 사람들을 견디지 못하고 너무 쉽게 연을 끊었던 나 자신은 죽이고싶다. 세상엔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 널렸다. 원래 살아가려면 그걸 다 견디고 이겨내야하는데 그게 당연한거라서 괜찮은냥 말하던 사람들, 죽어도 견디기 싫다고 생각하던 나. 나는 이 세상에 원래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내 엄마 아빠는 젊은 날의 실수로 결혼하고 나를 낳았다. 그 실수를 고칠 방법은 없다. 고통 속에서 어쩌다 시작된 삶을 끝끝내 살아야한다. 장난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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