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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하다’라는 단어가 우울장애와 얼마나 밀접한지 잘 모르겠다. 오늘은 알람을 잘 듣고 일어났음에도 일어나기 싫어서 계속 누워있었다. 최대한 게으름을 부리다 나왔고, 택시를 잡는 과정도 다른 때보다 어려웠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내 머리는 현실을 아주 천천히 인식하고있다. 나는 여전히 생각이 많은 사람인데, 뇌가 우울에 허덕이느라 제대로 기능을 못하니 평소같은 분량의 생각에 한 번 몰입하고나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있다. 무섭다.
생활패턴이 잡혔기때문에 우울하다고 아침을 다 날려 잠을 자는 일은 이제 없다. 지금 직장은 무척 편안한 분위기이고 일도 너무 한가한거나 바쁘지 않아서 좋다. 여기에서 진급을 하거나 연봉이 대단히 인상되는 일은 없을테지만 지금의 내가 밥벌이를 하며 다니기에 아주아주 좋은 직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참에 잠수타고 사라지자는 생각도 안 할 수 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생활패턴, 안정적인 직장, 내 곁에 있어주는 우리집의 고양이 두마리, 그리고 만나자고 연락하면 만날 수 있는 내가 애정하는 사람들과 트위터에서 내 이야기를 읽고 반응해주는 사람들, 내가 위로를 받거나 격려를 얻을 수 있는 넷플릭스의 시리즈들, 특정 요일 특정 시간대에 접속하면 내가 아진이란걸 아는 랏친들, 당신 공연을 내가 본다는 것을 알고 내 얼굴을 기억해주는 인디 사람들. 내 삶은 이렇게 여러군데에 축 늘어져 기댄채로 앞으로 간다. 전보다 많은 상황이 좋아졌고, 나 또한 더 괜찮은 사람이다. 앞으로 더 괜찮아질거다. 좌절의 경험 만큼이나 극복의 경험을 많이 했다. 이 우울은 곧 지나갈거다. 그래도 괜찮지는 않다. 내 주변의 많은 것들이 내가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기대할 이유이지만 괜찮은 이유는 아니다. 나는 괜찮고싶다. 희망을 갖고 꿈을 향해 전진하고, 오늘의 나를 격려하고 슬픔을 글로 풀어내는 대신 뭔가 이루고 행복의 한가운데에 있고싶다. 명예와 권력과 재물과 사랑 속에서 살다가 아주 가끔의 어려운 일을 만나서 극복하고싶다. 내 삶은 어려움의 연속이다. 불과 삼일 전까지는 내 감정을 쳐다보기가 어려운 것이 고민이었는데 오늘의 나는 내 감정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한다. 나는 슬프다. 나는 우울하다, 무기력하다, 화가 난다. 지긋지긋한 이 모든 감정들이 ‘우울 장애’라는 이름으로 지난 8년간 나와 함께했듯이 앞으로는 80년 이상을 함께할지도 모른다. 설령 그렇다해도 나는 더 많은 안전장치를 삶에 마련하며 잘 버틸 것을 믿지만, 안전장치에 기대야만 하는 우울이 찾아오는 것이 싫다. 나는 더 강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일상을 버벅이게 만드는 정신병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나쁜 사람이더라도, 누구의 애정도 관심도 받지 못하더라도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내가 만든 규칙대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출근 시간이 20분이나 늦춰졌는대도 매일 몇분씩 지각을 하는 내가 너무 싫다. 사람들이 나를 용서해줄지, 이유를 물으면 뭐라고 말해야할지, 우울증을 변명이랍시고 언급해도 되는건지, 그냥 내가 못났고 정신을 못차란거라고 말을 하는게 좋을지, 뭐가 이유이던간에 사람들이 나를 더는 믿을 수 없고 용서할 수 없게 되는 것 아닌지. 그럼 나는 이게 우울증 때문이든 나의 이기심 때문이든 변명을 한마디라도 하면 안되는 것 아닌지. 나는 이대로 살아있어도 되는건지. 생각한다.
지각을 몇십분도 아니고 몇분씩 하는 사람이라면 죽어야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각박하고 바쁜 세상에서 너도 나도 온전한 정신과 마음을 유지하기 어려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버티고 약속한 것들을 지키고 일상을 굴리며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있다. 그런데 내가 좀 더 유별나게 힘들다고해서, 그것이 내 잘못이 아니라고해서 사람들에게 나를 위해 조금 더 힘들어달라고 기대해도되는걸까.

나 자신에 대한 많은 생각들은 나보다 더 힘든 사람에 대해 생각하면 내려놓게된다. 그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부족함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둔 제도가 그들의 사회적 진출을 막는다. 어떤 사람들은 애초에 어떤 모습으로 태어난다. 이 사회는 그걸 알면서도 좀 더 편하게 빨리 앞으로 가겠답시고 정상의 범주를 만들었다. 그 범주 안의 사람들만 존재하는냥 제도를 만들고 편견을 만들었다. 나 역시 잘못된 사회의 일원으로서 어찌 저찌 기능하고 살아가며 많이 학습했으니 무고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대역죄인도 아니다. 정상 범주에서 벗어나 이만큼 살아왔는데 뭘 어쩌겠는가. 내 피해의식은 오로지 내 책임이지 않고, 당신들 책임이 있으며 많은 것이 바뀌어야함을 계속 말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수 밖에 없다.
우울증이 발병하기 이전에도 나는 이상한 애였다. 5학년때 반에서 따돌림을 당할 적부터 그랬을까. 어쩌면 네댓살 이전에 ‘엄마가 없는 여자애’가 된 때부터 그런지도 모른다. 이상한 사람으로 사는 것은 많이 어렵지만, 못견딜만한 것도 아니었다. 정상 범주에 있는 것 같은 사람들도 어떤 관점에서는 비정상이다. 이상한 사람이 안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안전한 공간과 안전한 사람들을 확보해두고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도 잘 버티는 법, 괜찮는 법을 익히면 된다.
우울증에 많이 의연해졌다. 우울의 증상들, 가슴이 꽉 막히거나 온 몸에 맥이 풀려 누워버리는 때, 침대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고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거나 식욕 조차 없는 때는 여전히 있다. 그래도 과거보다 현재가 더 괜찮다. 어떤 때에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몇가지 익혔다. 지금까지 나아져왔으니 앞으로는 더 나아질거라고 믿는다. 이 믿음을 말하기 위해 이 많은 얘기를 해야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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