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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치와 나누었던 상담에 대해 말하려 한다. 그 상담이 무척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의식 과잉이다. 이 말의 정확한 정의도 모르면서 내게 찰떡같이 들어맞는 말이라 생각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기, 모든 순간에 내가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 깨닫기, 자의식 과잉 벗어나고 행복한 삶 살자... 라는 내용의 글이 화이트 보드에 적혀있는 유명한 이미지가 있지. 볼 때 마다 저장해서 아마 사진첩에 그 이미지가 세 장 정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 그래야한다.라는 생각으로 몇 번 저장했던 것인데 어느 순간에는 그러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고싶고, 매 순간 내가 중요했으면 좋겠다. 왜 그럼 안돼?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을거라는 내 생각을 주치에게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묻기에 나는 아무 캐릭터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냥 평탄 무난하게 사람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낼 수는 있겠지만 아무도 특정 상황에 나를 떠올려 나를 보고싶어하지는 않을 것 같다. 주치가 내게, 평탄무난한 것이 나쁘냐고 물었다. 나는 주목받고싶다고 대답했다. 그게 중요한 거 였다고 주치가 말했다. 내 이상이 높기때문에 현재의 내가 초라해보이는거라고. 내가 바라는 내 모습이 저 쪽 위에 있다. 너무 너무 높은 곳에 있다. 모든 사람들이 반기며, 항상 옳은 표현만 사용하고 찰떡같이 들어맞는 묘사를 할 줄 아는 상상 속의 아진. 상상 속의 아진은 일도 잘하고 방도 잘 치우면서 소설도 쓰고 사람들의 무한한 신뢰와 사랑 속에서 살아간다. 상상 속의 아진은 말하는 속도도 적당하고, 어떤 말로든 사람들을 설득하며, 거절당할 이야기는 애초에 꺼내지 않는다. 상상 속의 아진이 꺼내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끝내 그 말이 정답임을 인정한다. 상상 속의 아진에 비해 현실의 아진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상을 조금만 낮추고, 현실의 자신도 인정해주라고 주치가 말했다. 나는 두렵다고 말했다.

 "그렇게 만족하고 평생 이렇게 살게되면 어떡해요? 물론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멋진 일이지만, 현실에 만족하려고만 하다가 정말 지금같은 현실만 살게될까봐 무서워요."

 주치가 아니라고 했다.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보면, 현재에 만족하고있는 사람들이 더 높은 곳에 오른다고 한다. 왜 그런고 하면, 높은 곳만 보다 보면 현재의 내가 초라하다는 생각에 무기력해진다고. 현재에 집중할수록 실행력이 높아진다고, 뭐 그렇게 설명을 해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주치가 덧붙여 말했다. 당신도 마찬가지이며 모든 사람들에게는 현재의 좋은 점이 있다고. 현재 당신의 좋은 점을 조금만 더 알아주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주치는 양 손을 주먹쥐며 내게 또 하나를 말했다.

 "나 자신에 대한 평가를 두 쪽이라 치면, 한 쪽은 남들에게 받고 한 쪽은 자기 자신에게 받아야해요. 그런데 지금은 자기 자신에게 인정을 못받고 있으니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자꾸 신경이 쓰이는거에요."

 나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 한 달 전으로 기억하는 승은님 방송 중에, 나는 채팅방에 '당신 노래 흥얼거리며 오늘 하루를 버텼다'는 말을 했었다. 승은님은 내게 어떤 노래를 흥얼거렸느냐 물었고, 그 노래를 지금 부르겠다고 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이 말이 어찌나 와닿았는지, 햇볕 좋은 날마다 이 말을 생각한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사실은 아직 이 말에 어울리는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다. 다짐하는 표현을 써야 옳다. 아진은 아진이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이를테면 좋아하는 공연 보러 가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로 글 쓰기. 집에 오면 잠옷으로 갈아입기. 매일 샤워하기. 음, 이정도는 잘 하면서 살고있다. 앞으로 새로이 할 것 은 이런 일기를 자주 쓰는 일이다. 마음에 상처를 받을 때마다 미운 그 상대에게도 삶의 무게가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하루에 한 번 씩 쓰레기를 버리고, 이사할 집을 알아볼 일이다. 지금의 아진은,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 할 때 잘 살 수 있다.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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