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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살 때 썼던 내 일기를 봤다. 그 때의 나는 양 극단에 대해 이야기했다.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사이와 침묵이 두려워서 쉴 새 없이 떠드는 사이. 그 때의 나는 내 모든 인간관계가 침묵이 어색하지 않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스스로를 음악 중독이라 진단하고 이어폰을 일부러 집에 두고 외출하기도 했다. 어색한 사람과 함께 있을 적에는 그 사람이 아니라 어색한 공기 그 자체에 익숙해지기로 했다.
그 때의 나는... 뭐라 한마디로 말하기 겁나는데, 참 빡시게 살았던 것 같다. 혼자 참 빡셨다. 그 무렵에 복근 운동도 했고, 온갖 기록 어플들로 내가 갔던 곳, 돈 쓴 것, 먹은 것 등을 기록했다. 이 시기 즈음에 수면 시간 기록했던 것도 있고, 더 자세하게 수면 주기를 기록하는 어플도 사용했었다. 혼자 나를 돌보는 일에 몰입했다고 설명할 수도 있겠다. 나 자신에 대해 그렇게나 꼼꼼히 들여다보았던 시기가 있었다니 지금 자아가 뚱뚱한 이유를 알겠다.
요즈음에는 다른 사람들도 본다. 내가 일기를 잘 쓰지 않게된 이유를 알겠다. 타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 타인을 구경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고, 타인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미 내 자아는 너무 뚱뚱하니까 더 이상 밥을 주는 것도 안 될 일이다. 헐 그럼 나는... 지금 되는대로 일단 글을 써 볼 것이 아니라 책을 읽어야할까. 칼럼이나 소설이나 가리지 않고 읽어야하나. :(
요즈음의 내가 꽂힌 것은 살아가는 것 그 자체다. 현실을 살아가는게 다른 무엇보다 재미있다. 그리고 그 현실에는 지긋지긋한 것도 섞여있다. 당장 지금 내 시야에 있는 유니클로 간판도 지겹다.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지긋지긋하다. 어떻게든 이미 짜여진 사회의 구조 안에 나를 꾸깃꾸깃 집어넣고 살아가고픈 욕망이 나를 끊임없이 잡아당기는 동시에 벗어나고싶다. 독립한 이후로는 슈퍼에 들른 것이 손에 꼽는다. 나는 맨날 편의점에만 간다. 이 사실을 깨닫고서 다시 슈퍼에 가볼까 생각했는데, 집 근처에 슈퍼가 하나밖에 없었다. 이 사실이 나를 쓸쓸하게 했다. 벗어날 수 없는 일상이 지겹고 지긋지긋하다고 느껴졌다.

전에는 어두운 이야기를 아주 잘 풀어냈던 것 같은데 이제는 턱 턱 막힌다. 말이 안나온달까. 설명이 안된다. 싫은 마음은 가득한데 논리적인 근거랄 것이 없다. 싫은 것들을 생각하는 일로부터 잘도 도망쳤다. 그렇다고 좋은 것들에 대해서는 자주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마음 한 켠에 가지고있다가 이야기로 풀어낸다. 거기에는 불만도 섞여있다. 뭐랑 뭐가 마음에 안들어. 누구랑 누가 다 망쳤어. 그 이야기들에는 함께 나눈다는 의미는 있어도 하늘까지 닿도록 뻗어나가는 생각의 가지가 없다. 그리고 이 글도 뻗어나가다 턱 턱 막힌다. 내 생각을 글에 담기에는 휴대폰 액정, 아이폰 세븐플도 작다. 키보드 자판과 노트북 화면이 필요하다. 그게 내가 글을 잘 안 쓰게 된 이유였고, 점점 긴 글을 읽기 힘들어진 이유였다. :( 

오늘은 세 잔의 맥주를 마셨다. 저녁 식사를 하며 클라우드 작은 병 하나를 마셨고, 공연을 보러 들른 곳에서도 맥주를 판매하기에 한 잔 마셨다. 이름은 기억이 안난다. 세번째 맥주는 기네스 생맥주였다. 얼굴은 처음 본 친구와 함께 마셨다. 용기내어 "술 한 잔" 말하기를 잘했다.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어색함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는데 내가 의식하지만 않는다면 좋은 것들에 더 집중할 수 있다. 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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