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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가 내게 정신병 나으려고 어떤 노력을 하고있냐 물었다. 그냥 질문이었다. 나는 병원에 다니고있다고 대답했다. J는 내게, 그런거 말고 너 혼자서는 무엇을 하느냐 물었다. 나는 혼자 무엇을 하는 것이 이제는 지긋지긋 하다고 대답했다. 너무 많은 것들을 혼자서 해야 했다. 거의 정신이 처음 들었던 것 같은 12살 때 부터 내 인생은 오롯이 내 것이었다. 아무도 내 인생을 설계해주지 않았다. 12살의 내게 그 자유는 너무 과분했고, 나는 많은 것들을 망쳤다. 내 인생을 이끌어줄 것들이 필요했다. 14살 때는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처음 갔던 대규모 복음 캠프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마음으로 공부하겠노라 다짐했다. 수요예배와 금요철야예배에 매주 참여했다. 가족들에게 수학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고모가 전화로 학원에 상담 예약을 잡았다. 그때는 스마트폰도 없었고, 지도 어플로 찾아서 갈 수도 없었다. 어림 잡아 들어간 학원은 엉뚱한 곳이었다. 그 학원의 남교사는 상담이 예약되지도 않은 중학생에게 성적부터 물었다. 기억이 안난다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어 대강 대강 대답했다. 나를 대단한 문제아 대하듯 하던 그 태도를 기억한다. 기분이 상한 채로 학원 건물을 나오며 고모와 통화했다. 그제야 거기가 아니었다는 걸 알고 수학 단과 학원에 갔다. 초중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괜찮은 곳이었다. 숙제를 열심히 했다. 가장 쉬운 난이도의 수학 문제집도 개인적으로 풀었고, 다른 교과 수업에도 성실히 참여했다. 성적이 올랐다. 인생이 계속 그렇게 쉽기만 했으면 좋았을텐데 뭐가 문제였는지 모르겠다. 수업을 듣는 것 자체가 싫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냥 항상 문제가 많았다. 가정에서 문제가 많았고, 학교에서 문제가 많았고, 교회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너무 많은 문제들 앞에 더이상의 문제풀이가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죽어버리고싶은 마음에 굳이 미래를 위한 공부가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때의 나를 생각하면 너무 우습다. 결국 아무것도 못했지. 다시 학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며 입학했던 고등학교는 1년도 버티지 못하고 자퇴를 했다. 우울증이 나를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몇 몇 어른들은 내 문제를 해결해주고싶어했다. 교회에서는 나를 위해 기도만 해주었을 뿐 아니라,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떡볶이라도 한 번 더 사주려는 언니오빠들이 있었다. 학교 선생님은 내게 상담을 권했고, 수업을 듣지 않더라도 학교에 출석하기를 원했다. 16살 때 부터 19살 때 까지 청소년 수련관에서 동아리 활동을 했다. 내게 오늘은 또 무엇이 우울하냐 묻는 선생님들이 있었고, 언니오빠들이 있었다. 내가 과분하다고 기억하는 그 사랑을 내가 자격이 있어서 받았던 거라고 생각해도 될까. 그 때의 나는 너무 엉망진창이었다. 남들의 입장을 생각하기엔 마음이 너무 아팠는데, 그렇다고 세상천지 힘든 사람이 나 하나인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엉망인 나를 받아줘야만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도 받아줬다. 그래서 나는 엉망인 사람을 내 인간관계에서 선 긋고 싶을 때 마다 죄책감이 든다. 당장은 받아주지 못해도 언젠가는 다시 안아줘야만 할 것 같은 부채감을 느낀다. 그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단 한 공동체에서만 나를 방치했는데, 가족이라는 공동체였다. 그들은 내 자해흉터를 못 본 채 하거나, 화를 냈고, 혼을 냈다. 아무도 내 의견을 묻지 않았으며 내가 말을 해도 이해하지 못했다. 가족들과 엉킨 모든 문제가 나 혼자 풀어야만 하는 과제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단 한 번 이라도 나를 이해하려 했을지 모르겠다.


 사실은 아무것도 혼자 해결한 것 없다. 지금의 경제적 독립과 정서적 독립, 내 모든 것들이 사람들의 도움과 응원으로 이루어졌다. 아마 그 중에는 가족들의 몫도 있을텐데, 아직도 너무 미워서 생각하고싶지 않다. 미워하는 일은 지친다. 지쳐하는 것도 지친다. 내가 혼자 살아왔다는 생각이 나를 지치게 했고, 정신과에 다니는 것 외에 아무 노력도 안 하게 했다. 그래도 나는 정신병이 많이 나았는데, 사람들이 내게 있었기 때문이다. 다 너무 소중하다. 버릴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미운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언젠가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 J도 내게 미운 사람이라 연락을 끊었다. 각자 삶을 살다가 언젠가 또 만날까. 모를 일이고, 사실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J같은 사람을 또 만났을 때는 미워하지 말아야지. 그 때는 나도 안아줘야지. 그렇게 다짐하면서 오늘의 나를 미리 용서한다. 오늘은 미래에 빚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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