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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글 카테고리 하나를 추가하려고 노트북을 켰다. 새벽 다섯시 반이다. 보안카드를 잃어버렸다. 퇴근하며 탔던 택시의 영수증을 회사에 제출하기 위해 받았었다. 영수증에 택시기사님의 휴대폰 번호가 적혀있었다. 분명히 택시에 두고내렸다. 새벽 1시에 탄 택시였어도, 전화를 걸기엔 벌써 새벽 4시였다. 서비스직으로서의 공손함을 끌어올려 카드 흘린 것 없는가 문자를 보냈다. 없다고 했다. 답장 감사하다고, 수고하시라고 답장했다.

 요즈음 다시 주눅들어 산다. 나는 뭐가 그리 무서울까. 매일같이 듣는 랏밴뮤의 매일같이 참여하는 채팅방에서 난 버릇처럼 '내 잘못'이나 '나 자신도 세상도 용서'같은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무도 반응해주지 않았더라면 몰랐을텐데, "아진님도 무죄 ! 세상도 무죄 !"라던가 "모든게 아진님의 잘못일리는 없다"고 대답해주시는 분이 있어서 알았다. 왜 나는 계속 용서를 구하고, 내 잘못에 대해 생각하고있는지 모르겠다. 마냥 무섭다. 사람들이 내 못난점을 속속들이 알아챌까봐. 그리고 기분이 아주 좋을 때는 실체도 정확히 모르겠는 그 잘못들을 용서받은 것만 같다. 중학생 때 "사과는 잘해요."라는 소설책을 읽었었다. 아주 심오한 소설이었지.

 네이버도 결국 양아치 대기업이었다는 이야기를 읽고서 티스토리로 옮겼다가 너무 어려워서 텀블러라는 블로그로 옮겼었다. 한참을 이용하다가 외로워서 다시 네이버 블로그를 시작하려 했었는데, 디자인이 너무 후졌다. 모바일에 최적화된 블로글들이 많은데, 네이버 블로그는 도저히 모바일로 보았을 때 예쁘지가 않다. 관심받고 소통하기에 가장 간편하기는 하지만 내게 그런 것은 예쁜 것 이상으로 중요하지는 않다. 관심과 소통은 트위터와 카카오톡으로 충분하다. 한 때 익명 애스크로 질문을 받고 답변하는 것이 즐거웠는데, 본인이 누구인지 티내면서 꼭 익명으로 연락하는 누군가때문에 께름칙하게되었다. 싫다. 이런 기억은 슥 슥 밀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 블로그를 옮겨다니면서 내 지난 기록들을 모두 비공개로 변경하고 다시 봐도 수치스럽지 않은 글들만 옮겨오는 것 처럼. 정말 싫은 무엇에 대해 생각이 한 번 들면 비슷하게 싫은 것들이 하도 많이 생각나서 생각의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럴 때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기분 나쁜 것은 글로 풀어내어 설명하는게 나의 어떤 돌파구같은 것이었는데, 그마저도 하고싶지가 않다. 너무 싫으니까 텍스트로 확연히 옮기고 싶지도 않다. 글로 이야기된 싫은 것이 설명된 이후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확연한 텍스트로 좀 더 확실하게 내 머릿속에 계속 존재할 것만 같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애초에 오래되고 싫은 기억은 완벽히 설명될 수가 없다.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나서 그런 취급을 받거나 그런 일을 당할 이유가 없었다. 그 어떤 피해도 정당하지 않다. 싫은 사람의 심정을 이해해버렸다가는 내 억울함을 나 스스로도 못알아주게 될 것 같다. 그것만큼은 포기 할 수 없다.

 아니 하려던 이야기는, 그러니까 아무튼. 이런식으로 다시 처음의 주제를 짚으며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는 것은 멋 없어 보여서 자연스럽게 한 번 돌아와보려했는데 결국 그러지를 못하고 싫은 것에 대한 이야기만 잔뜩 쓰고있었다. 그냥 조금 멋 없는 나 자신을 또 인정하기로 하자. 글 시작부터 인정하고 고백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네이버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기에는 텀블러의 심플한 디자인이 예뻤다. 심지어 텀블러는 pc로 봤을 때 더 예쁘게 할 수 있다. 다만 게시글을 비공개로 설정 할 수도 없고, 카테고리를 나누어 글을 저장 할 수도 없고, 날짜도 뜨지 않아서 매번 내가 별도로 표시해두곤 했다. 편집이 워낙 자유로운 블로그라서 내가 소스 어쩌구를 잘 다루는 사람이었다면 잘 해냈겠으나 그것때문에 HTML을 배우기엔 내가 너무 게을렀다. 사실 공대 출신 지인에게 한 번 과외같이 무언가 배우긴 했었다. 어느 즈음 부터는 전혀 이해가 안가서 고개만 계속 끄덕이며 이해하는 척만 했었다. 미안하게도. 그래도 텀블러는 계속 좋았다. 아이폰 사진들은 폴더별로 정리하기가 힘든데 그냥 그 나름대로 적응했듯이, 텀블러에도 그렇게 적응했었다. 글을 어느 카테고리에 올릴지, 카테고리 이름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 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 긴 글 자체와 멀어지면서 텀블러에 잔뜩 질렸다. 텀블러에 긴 글을 쓰기가 의외로 어려웠던 점도 있었다. 커서가 지 멋대로 간다던지, 앞 부분 수정이 힘들어진다던지 버그가 많았다. 그래서 텍스트 파일에 잔뜩 다 쓴 이후에 복붙으로 게시하곤 했었는데, 그마저도 나중에 수정하려하면 다 코드로 떠서 그냥 두어야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수정 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노트북과 멀어지고, 현실에 치이면서 글 쓰기가 정말 힘들어졌다. 내 뇌에는 휴식이 필요했다. 상처받고 불안한 마음을 보듬어주고 치유할 시간보다도 더 필요했다. 그렇게 한참 블로그가 잠수 상태를 유지중인데도 간혹 좋아요가 눌리고 팔로우가 늘었다. 그게 다 스팸 계정이었다. 하나같이 포르노 스팸이었다. 영어로 더러운 메시지도 받은 적 있는데, 내 영어 실력에 비해 너무 길게 와서 무슨 말인지 해석은 못했어도 더러운 말인게 확실했다. 첫 단어가 "Girl!"이었고, 프로필 사진은 자지였다. 씨발

 텀블러에 올렸던 글들도 모두 비공개로 전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다. 일단은 포르노 계정이 내 게시글에 반응했다는 알림이 올 때 마다 그 계정들을 차단하고있다. ㅜ 텀블러에 내 소중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꾸준히 반복되니까 더럽혀지는 기분이다. 어떤 글은 삼십번 이상 공유되었다. 트위터의 "인용하기"라는 기능처럼, 내 글을 공유하며 코멘트를 덧붙이는거다. 나쁜새끼들.

 사실은 그냥 기분만 나빠하며 지내고있었는데, 요즈음 부쩍 다시 긴 글과 내 글이 쓰고싶어졌다. 삶에 다시 그만큼의 여유는 생겼기때문일까. 아니 무엇보다 기록하고싶은 소중한 무엇이 새로 생겼기 때문이다. 후후

 브런치라는 작가 공간이 있었고, 포스트 타입이라는 창작자의 공간이 있었다. 브런치는 단순히 글을 등록한다는 의미의 발행이 아닌, 정말 발행한다는 느낌의 공간이었던 것 같다. 포스트 타입은 어떤 게시자도 유료 컨텐츠를 게시 할 수 있었다. 둘 다 멋져보였지만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 자조적인 의미에서의 표현이 아니다. 나는 지금 무엇인가? 그 어떤 분야에도 전문적이지 못하다. 내 직업과 관련하여 무언가 떠들만큼 익히지 못했다. 배울 것들도 아직 많다. 글을 쓰는 것에 관해서는 만년 뜨내기다. 작가들의 삶을 보며 동경할 뿐 그들의 부지런함을 따라하지 못한다. 부지런함도 재능이라며 부러워 할 뿐이다. 나는 무엇도 나 자신만큼 사랑하지 않는다. 신념이나 취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페미니즘을 비롯한 인권 이론들을 일상에 적용하면서 가장 최근 내렸던 결론은 권력 구조 안에 쏘옥 맞는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소망이다. 영국에서 적당히 돈 많은 부잣집 백인 소년으로 태어나서 햇빛 좋은 나라로 여행하며 다녔다면 나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 살아보지 않고서는 모르는거라고들 하지만, 서러워도 그 삶이 좋았을 것이다. 사실은 여성성을 완벽히 소화해내는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았다면 어땠을까도 생각한다. 여성을 혐오하는 사회가 만들어낸 '숭배받을만한 여성의 모습'을 내가 살아내고 있다면 그 삶은 얼마나 예뻤을까. 하지만 이 일은 일어날 수 없다. 그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없다. 여성 숭배는 애초에 여성을 숭배하기 위함이 아니라 숭배받을 자격이 없는 여성들, 남성의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 모든 여성들을 혐오하기 위해 만들어낸 핑계같은 것이므로 완벽한 여성성을 소화해 낼 수는 없다.

 아진은 그냥 아진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한다. 그리고 가끔, 원컨데 자주 소설을 쓰기로 한다. 다른 소설들도 그렇지만, 김연수 작가님의 소설을 읽다보면 가슴이 뛴다. 나도 빨리 글을 쓰고싶어서 책을 덮고싶다. 그만큼 아름다운 문장을 쓴다. 김연수는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그런 글을 쓸까. 마냥 책이 좋아서 관련 학과의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 일을 하다가, 더 적은 급여이지만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책 관련 언론사로 이직을 하고... 뭐 그런 삶을 살았더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아마 그 기사도 읽다 말았을 것이다. 나는 뒷심이랄 것이 정말 없다. 지금 이 글을 쓴 노트북의 바탕화면에는 쓰다 만 글이 한바닥 있다. 비가 오는 크리스마스에 대해 이야기하려했지. 내게 그 크리스마스가 얼마나 특별했는지, 어떤 설레는 일들이 있었는지. 또 어떻게 하면 더 설렐 수 있었는지. 누군가는 내가 어떤 방식으로 설레길 기대했었으니 그 사람의 바람을 조금 넣어 글을 완성하고싶었지. 그런데 너무 많은 욕심이었을까. 장편소설들은 대체 어떻게 쓰여지는걸까. 소설을 쓰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은 글이 쓰여지든 말든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하겠지. 글을 쓸 기분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출근할 기분이 영 아니어도 출근하고, 커피 뽑고 베이커리 소분 할 기분이 영 아니더라도 그렇게 하고있듯이. 그리고보니 무언가 선택이 아니라 일이 되면 기분같은건 아얘 생각할 겨를도 없는 것 같다. 그러다 언젠가 마침 너무 지친 날에 꼼수 부릴 기회가 생기면 무너지기도 하지만. 어렵다. 나는 왜 더 좋은 글을, 더 많이, 아니 그냥 글 자체의 완성을 못할까 생각하다보면 게을러서 그렇다는 이유밖에는 생각이 안났었는데, 그렇게 자책으로 퉁치고 넘어갈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아진의 문제는 무엇일까? 아진은 그냥 아진이라는 것이 문제인걸까? 그럴리가 없다. 그렇다면 뭘까,,, 일단 자야한다. T__T 다음에는 낮에, 글을 오랫동안 써도 괜찮은 시간과 체력이 있을 적에 긴 글을 쓰게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내가 글을 쓸 타이밍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쓰기 시작했으면 좋겠고. 근데 그게 뭔지 참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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