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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의 점심시간이 한시반부터 두시반인줄로 알고 바삐 걸음을 옮겨 한시 십오분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은 한시부터였다. 점심시간이라고 설명하는 카운터 직원분에게 “제가 오늘이 아니면 못와서요. 어떻게 약만이라도 안될까요?” 여쭈어보니 물어나 보겠다고 하셨다. 조금 기다렸다가 상담을 받으러 들어갔다. 앞에 상담한 다른 환자분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본인 부르는 것으로 듣고 들어와서는 내 옆에 앉았다. 의사가 일으켜 내보내면서 “다른 환자가 있는데 그렇게 앉으시면 어떡해요. 이만큼 인지능력이 떨어지신거에요.” 그렇게 설명했다. 자리로 돌아와 내게 놀랐겠다고 말을 건넸고 나는 그냥 웃었다. 아주 조금 놀랐고, 불쾌한 순간은 없었다.
공연 보러 여행 다녀온 이야기 하고 후려치기를 당한 것을 이야기했다. 의사는 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했다. 자기가 뭔데 그렇게 말하느냐고 내 편을 들어줬다. 나는 그래서 표정관리를 전혀 안하고 눈도 안마주친 내가 싫었다고 말했다. “그 사람들은 아진씨 기분을 상하게 했잖아요. 누가 잘못한거죠?” 나는 그 사람들이 문제인 거라고 대답했다. “잘못한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생각도 안하는데, 왜 아진씨가 노력해야해요?” 그래도 표정관리가 힘들었다고 다시 한 번 말하자, 의사는 내게 괜찮다고 말했다. 그건 내가 정신병자라서 표정관리를 할 수 없었던게 아니었나보다고, 나는 그렇게 느껴졌다. 내가 기분이 나쁠 때 즉각적으로 행동을 취하지 않고, 괜찮은 척도 하지 않았던 것은 나쁜 행동이 아니었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
나는 또 코가 건조하고 목이 바짝바짝 말라서 피가 나오는 것에 대해 말했다. 약을 꾸준히 먹었더니 더 심해졌다고도 설명했다. 의사는 내게 그 약은 한 열배 정도의 용량을 먹어야 코가 조금 마르는 부작용이 있다고 말했다. 내게 물을 잘 마시라고 했다. 나는 일을 할 때 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화장실도 다섯번씩 다녀오곤 한다고 말했다. 의사는 내게 물을 마시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맛있는 음식을 씹어서 삼키듯이 물도 그렇게 씹어서 삼키라고 했다. 물을 한번에 많이 마시지말고, 그렇게 조금씩 자주 마시라고. 가능하면 커피 포트 증기라도 쐐라고 했다. 내가 “가습기처럼요?”하고 묻자 “가습기는 하지마세요. 귀찮으니까.” 그렇게 말했다. 약도 꾸준히 먹기 어려워하지 않느냐고. 귀찮은거 하지 말랜다.
“답을 모르면 힘들죠. 코가 마르고, 입이 마르는 거. 답을 모르면 해결을 못해요. 그런데 모든 문제에는 답이 있어요.” 앞서 기분이 상했던 대화에서도, 여유가 있으면 그 사람들의 성격을 파악하고 내 위치를 점검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거라는 설명을 했다. 영국 드라마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에서 주인공 레이와 상담가의 대화중에 상담가는 이런 말을 했다. “네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얼마나 힘들든, 항상. 언제나. 해답은 있어.”
상담을 마치고 나와 약을 받았다. 카운터 직원분께서, 밥도 못먹게 했다며 투덜대셨다고 의사 이야기를 했다.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정신과를 나오며 조금 울컥했다.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 나는 잘하고있다. 벌써 몇 개의 답을 찾았다. 내가 이래서 혹은 저래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많은 일들이 사실은 어쩔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잘 할 수 있다.

지금 나는 승은님의 노래를 듣는다. ‘왈츠를 배워볼게’라는 노래에 “너는 비겁하지 않아. 하나도 비겁하지 않아.”라는 가사가 있다. “네 용기의 모양을 난 사랑해.”라는 가사가 있다. >>>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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