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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공연이 끝난 뒤 흥겨운 술자리를 가졌다. 새벽 두시 즈음 매장의 영업이 끝났다하야 다같이 밖으로 나왔다. 몇 사람이 차를 타고 떠났다. 또 남은 몇사람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갔다. 나는 집에 가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집에 안갔다. 그 자리엔 장씨도 남아있었는데, 내 의도가 뭐였든간에 나는 생떼를 부렸다. 집에 가지 않겠다는 생떼였다.
홍대에서 방황하는 24살 여성이 살해당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것이 소수점의 퍼센트라 하더라도 중요한건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날 수 있다는 거 였다. 이 대책없는 인간을 걱정한 장씨는 내게, 어여 집에 가라고 타일렀다. 나는 집에 가고싶지 않았다. 장씨도 집에 갈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영화를 보러 가려던 유빈을 마주쳤다. 이 착한 두 사람은 나를 위해, 혹은 스스로의 양심을 위해 아직 문 닫지 않은 가게를 찾았다. 따듯한 차를 한 잔씩 마시기로 했다. 내가 기대한 적 없던 상황이었다. 마음이 놓이자 상황 파악이 되고 부끄러워졌다. 두사람에게 너무 미안했으며 내가 나라는 사실이 서러웠다. 내가 다른 누가 아닌 아진이란 사람이라는 것에 아팠다. 그래서 울었다. 눈물과 함께 찔찔 흘린 콧물을 어디에 닦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혼자 남겨지는 것이 매번 운명처럼 마주하게될 내 위치라 믿었다. 이 믿음은 내가 사랑받는 순간에도 확고해서 기대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어쩌면 기대가 맞다. 내 디폴트는 버림받음과 혼자됨이다. 디폴트가 되어야 다음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내 생떼에 대해 두 사람이 조금만 더 피곤히 여겼더라면 나는 얼마든지 혼자가 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완전히 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나는 그제야 내 상황을 보고 택시를 탔을 것이다. 쓸쓸한 마음이 들었겠으나 울지 않았을거다.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뿐이기 때문이다. 밤이 지나 아침이 오는 것에 당신은 울지 않는다. 밤이 지나도 아침이 오지 않을 때 당신은 운다.
그래서 따듯한 차를 홀짝이며 울었다. 영원히 혼자이거나, 즐겁다 쓸쓸해지거나, 환영받다 버려지는 것이 내게 일어났어야 할 일인데 그 날 아무도 나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가게도 영업시간이 다 되어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장씨는 집에 가야했고, 유빈은 더 있어줄 수 있었으며 나는 여전히 집에 가고싶지 않았다.
그러나 집에 가기로 했다. 이미 너무 민폐를 끼쳤으며 충분한 위로를 받았다. 택시를 타기로 한 내게 장씨가 이거라도 하라며 자기 목도리를 둘러줬다. 다음에 돌려달라했다. 생떼를 쓰다 버려지지 않아도 다음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쓸쓸한 마음 없이, 기쁨 옆에 멀뚱 서있는 슬픔을 외면하지도 않고 무사히 귀가했다.

두사람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어떻게 사과를 하면 좋을까만 생각했는데, 이미 민폐를 끼친 직후에 여러 차례 사과했었으니 또 사과하는 것 역시 민폐일 것 같았다. 그날 새벽 다섯시에 집에 도착하고서 서너시간 정도 자고 출근했다.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장씨가 내게 둘러줬던 목도리가 보였다. 그건 그냥 물건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이었다. 찡했다. 나는 소중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날의 두사람에게, 그리고 그간 날 견뎌주고 애정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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