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의 책읽는 팟캐스트를 요즈음 다시 듣고있다. 휴대폰이 정지된 이후로 나는 집 밖 어딘가 와이파이가 연결되는 곳에서 팟캐스트와 인터넷 괴담들을 다운받곤 한다. 오늘은 아침부터 도서관에 다녀오자는 다짐을 했었지만 아침은 커녕 정오가 다 되어 일어났다. 어제도 나는 새벽 세시에 잤고, 당연하게도 기상 시간이 점점 늦춰지고있다. 이걸 일종의 불면증으로 여겨도 될런지 모르겠다. 아홉시나 열시에 일어났어도 새벽 세시가 넘어 잠을 자는데, 피곤하다는 것을 얼마나 느끼던간에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비빔면을 두개 끓여서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갈 채비를 하며 옷을 갈아입고서도 한참을 엎드려 요리중독을 했다. 팟캐스트도 계속 들었다.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유독 재미있어 벌써 몇..
내게 아직 기회가 있다는 것이 감격스럽고 두렵다. 나는 몇 번이고, 얼마든지 망칠거다. 우울증을 오랫동안 앓으면서 집에 틀어박혀 나를 고립시켰던 때는 많지만, 그 결과가 신용카드를 비롯한 각종 공과금들의 연체로 이어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처음에 다짜고짜 누워버렸을 때는, 어떻게든 될 것이니 일단 쉬자고 생각했다. 나는 서러울만큼 쉬고싶었으니까. 이미 엎질러진 상황, 몸이나 편히 쉬고 다시 생각하고싶었다. 그게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몰랐다. 상황을 망치기 직전의 한 달 이상을 나는 지각도 참 많이 했고, 기분도 꾸준히 가라앉았었다. 버스 창가에 앉아서도 내 처지를 생각하다 눈물이 펑펑 나서 한참을 울었던 적도 많다.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너무 힘들었다는게 새삼 다시 느껴지면서 나 자신을 안타까이 여..
냉장고에서 유통기한 지난 요플레를 꺼내 먹은 것이 3일 전이었다. 실수로 한 번 코드를 뽑았다가 다시 꽂은 냉장고에 있던 요플레였다. 날짜가 어디에 적혀있는지 확인하지도 않았다. 일단 입 안에 넣어보니 괜찮았다. 먹으면서 상한듯한 시큼함이 조금 느껴졌고, 배가 아팠지만 입 안에 넣는걸 멈출 수가 없었다. 그 다음날에는 통장에 남은 돈으로 간짜장이랑 군만두를 주문했다. 어차피 마지막 식사였으므로. 나는 나를 살릴 계획이 없으므로 본능이 시키는대로 입안에 다 쑤셔넣었다. 배가 불렀지만 멈추지 않았다. 싹싹 긁어 입 안에 넣고 그릇을 내놨다. 그리고 어제는 물만 마셨다. 칩거 생활을 지속하면서 시간이 무섭게도 빠르다고 생각했었는데 배가 고프니 하루가 느리게 간다. 물을 마시며 허기를 달랬다. 의외로 버틸만한 ..
이번 일주일은 하루를 빼고 모두 지각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고칠수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하나하나 뜯어 생각해보니 나는 갑자기 우울해진게 아니었다. 늘 그렇듯 쓰레기를 치우기 싫었고, 어느날 세탁기를 돌렸으나 널기 싫었고, 씻기 싫었고, 일어나고싶지 않았다. 하기싫은 것들을 최대한 미루면서도 어떻게든 일상이 굴러갔던 것은 그 사이사이에 재미있는 일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기대하던 일정 하나가 엎어졌다. 일정 하나에 기대어있던, 진즉 했어야했던 모든 일들이 엎어졌다. 하루아침에 나를 부지런맨으로 만들어줄 그런 해결책은 없다. 익숙해져야한다. 술, 담배, 커피가 어떤 이유로 마법을 부려 나를 정신차리게 해주거나 나의 솔직한 자아를 마주할 수 있게 해줄거라 늘 기대한다. 사실은 항우울제에게도 마법을 ..
‘우울하다’라는 단어가 우울장애와 얼마나 밀접한지 잘 모르겠다. 오늘은 알람을 잘 듣고 일어났음에도 일어나기 싫어서 계속 누워있었다. 최대한 게으름을 부리다 나왔고, 택시를 잡는 과정도 다른 때보다 어려웠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내 머리는 현실을 아주 천천히 인식하고있다. 나는 여전히 생각이 많은 사람인데, 뇌가 우울에 허덕이느라 제대로 기능을 못하니 평소같은 분량의 생각에 한 번 몰입하고나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있다. 무섭다. 생활패턴이 잡혔기때문에 우울하다고 아침을 다 날려 잠을 자는 일은 이제 없다. 지금 직장은 무척 편안한 분위기이고 일도 너무 한가한거나 바쁘지 않아서 좋다. 여기에서 진급을 하거나 연봉이 대단히 인상되는 일은 없을테지만 지금의 내가 밥벌이를 하며 다니기에 아주아주 좋은 직장..
이 사람은 인도에서 살며 수채화로 그림을 그리고 스캔을 떠서 전송한다고 했다. 이 낭만적인 사람의 일러스트 그림 전시가 2018년 11월부터 12월까지 있었다고한다. 매주 금요일 연재되던 웹툰 ‘진눈깨비 소년’은 스토리 전개도 잔잔하니 좋았으며 와닿는 부분이 많아서 다 밑줄긋고 내 생각을 메모하고싶었다. 이 웹툰에 처음 빠졌을 적의 나는 우울증때문에 뭘 하기가 어려울 적이었다. 생각의 가지가 너무 많이 뻗는데다가 한 번 볼 때 마다 책을 읽듯이 집중해야해서 웹툰을 챙겨보는 일이 꽤나 버거웠다. 대신 단행본이 나오면 꼭 사자고 생각을 했더랜다. 그리고 오늘 또 생각이 나서 검색해보고 끝나버린 전시 소식을 접한 것이다. 아. 나는 또 무언가 놓쳤던 것이다. 하지만 단행본은 절판되지 않았다. 전시를 못 ..
김뜻돌님의 공연, 사라져라는 곡을 부르고 소리를 지르고 싶어 만든 곡이라고 소개했다. 여러분들 위해서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노래라고 설명한다. 예쁘다. 당신이 언어가 아닌 노래를 부르는 구간이 무섭다. 앞의 부분은 일본어로 불러서 어차피 내가 못알아들을 언어였음에도 언어가 아닌 노래를 부르는 구간과는 전혀 다르다. 이것은 언어가 아니고 노래라는 그 음의 빈 틈이 나 자신을 마주하게끔했다. 도망치고싶다. 그런 기분을 느낀다. 왜, 왜냐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나로서 살아있는 것은 겨우 버티며 죽어가는 나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겨우 살아 지금까지 왔다. 이 이후에 더 좋은게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고 눈을 마주쳐주지 않을 때 나는 내 어딘가 단단히 잘못되었..
정신과에서 회피에 대해 말했다. 내 성격 유형의 특징이 ‘회피’인데 난 회피를 안하니까 이 유형이 아닐 수 있다 생각했으나 매사에 그렇게 살고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즈음 연애하고싶은 마음이 들어서 이 사람 저 사람 눈여겨 보는데, 여러 사람을 눈여겨 보고 마음에 담는 것이 꼭 내 깊어지는 감정에 대한 회피 같다고 말했다. 연애 뿐만 아니고 모든 인간관계에서 나는 한 사람에게 깊이 빠지기를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내가 깊게 빠지면 잘되지 않을거라는 확신같은게 있어요.” 내 말에 주치의가 대답했다. “확신이 있는게 아니고, 지레 겁먹는거죠.” 그리고 정신과 진료를 꾸준히 받는 것은 회피하는게 아니라고 짚어주기에 내가 말했다. “그래서 제가 회피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거에요.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고 약을 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