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공연이 끝난 뒤 흥겨운 술자리를 가졌다. 새벽 두시 즈음 매장의 영업이 끝났다하야 다같이 밖으로 나왔다. 몇 사람이 차를 타고 떠났다. 또 남은 몇사람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갔다. 나는 집에 가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집에 안갔다. 그 자리엔 장씨도 남아있었는데, 내 의도가 뭐였든간에 나는 생떼를 부렸다. 집에 가지 않겠다는 생떼였다. 홍대에서 방황하는 24살 여성이 살해당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것이 소수점의 퍼센트라 하더라도 중요한건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날 수 있다는 거 였다. 이 대책없는 인간을 걱정한 장씨는 내게, 어여 집에 가라고 타일렀다. 나는 집에 가고싶지 않았다. 장씨도 집에 갈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영화를 보러 가려던 유빈을 마주쳤다. 이 착한 두 사람은 나를 위해, 혹은 스스로의..
병원의 점심시간이 한시반부터 두시반인줄로 알고 바삐 걸음을 옮겨 한시 십오분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은 한시부터였다. 점심시간이라고 설명하는 카운터 직원분에게 “제가 오늘이 아니면 못와서요. 어떻게 약만이라도 안될까요?” 여쭈어보니 물어나 보겠다고 하셨다. 조금 기다렸다가 상담을 받으러 들어갔다. 앞에 상담한 다른 환자분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본인 부르는 것으로 듣고 들어와서는 내 옆에 앉았다. 의사가 일으켜 내보내면서 “다른 환자가 있는데 그렇게 앉으시면 어떡해요. 이만큼 인지능력이 떨어지신거에요.” 그렇게 설명했다. 자리로 돌아와 내게 놀랐겠다고 말을 건넸고 나는 그냥 웃었다. 아주 조금 놀랐고, 불쾌한 순간은 없었다. 공연 보러 여행 다녀온 이야기 하고 후려치기를 당한 것을 이야기했다. 의사는 그 사람..
좁은 화장실을 차지하던 수납 뭐시기를 닦아서 신발장으로 옮겼다. 이제 이건 신발장이다. 이사 온 이후 계속 화장실에 있었고, 구멍 송송 뚫린 것을 보니 화장실에 두라고 만들어진 수납 뭐시기였지만 내가 현관문 앞에 두고, 신발을 올려놨으니 이제 신발장이다. 오래된 운동화 두켤레를 물에 행궈 창고에 뒤집어뒀다. 해가 뜨면 햇빛이 가득 들어와 마를 것이다. 한참 안 신은 구두도 물에 헹궈서 뒤집어놨다. 빨래를 두 번 돌렸다. 재활용 쓰레기를 세묶음 버렸다. 일반쓰레기 봉투 20L 하나를 다 채워 묶었다. 이건 내일 내놓을 거다. 매트리스를 원하는 위치로 옮겼다. 매트리스 옮기면서 그 근처 바닥을 한 번 쓸었다. 덥다. 더워서 큰 일이 날 것만 같다. 지금 내가 이렇게 힘든 것이 이미 큰 일이다. 그런데 오늘..
주치와 나누었던 상담에 대해 말하려 한다. 그 상담이 무척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의식 과잉이다. 이 말의 정확한 정의도 모르면서 내게 찰떡같이 들어맞는 말이라 생각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기, 모든 순간에 내가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 깨닫기, 자의식 과잉 벗어나고 행복한 삶 살자... 라는 내용의 글이 화이트 보드에 적혀있는 유명한 이미지가 있지. 볼 때 마다 저장해서 아마 사진첩에 그 이미지가 세 장 정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 그래야한다.라는 생각으로 몇 번 저장했던 것인데 어느 순간에는 그러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고싶고, 매 순간 내가 중요했으면 좋겠다. 왜 그럼 안돼?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을거라는 내 생각을 주치에게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
스무살 때 썼던 내 일기를 봤다. 그 때의 나는 양 극단에 대해 이야기했다.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사이와 침묵이 두려워서 쉴 새 없이 떠드는 사이. 그 때의 나는 내 모든 인간관계가 침묵이 어색하지 않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스스로를 음악 중독이라 진단하고 이어폰을 일부러 집에 두고 외출하기도 했다. 어색한 사람과 함께 있을 적에는 그 사람이 아니라 어색한 공기 그 자체에 익숙해지기로 했다. 그 때의 나는... 뭐라 한마디로 말하기 겁나는데, 참 빡시게 살았던 것 같다. 혼자 참 빡셨다. 그 무렵에 복근 운동도 했고, 온갖 기록 어플들로 내가 갔던 곳, 돈 쓴 것, 먹은 것 등을 기록했다. 이 시기 즈음에 수면 시간 기록했던 것도 있고, 더 자세하게 수면 주기를 기록하는 어플도 사용했었다. 혼자 나를 돌보..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의 이라부 이치로 시리즈 중 화재를 두려워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가스 꼭지를 제대로 잠갔는지 출근길에 세네번씩 되돌아가서 확인하는 사람이었다. 사실은 자기 책임이 아닌 화재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오늘의 내가 그 사람이랑 닮았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나와 그 사람 중 오직 나만 비겁한 것 같다. 일을 제대로 못해서 울적한 나는 비겁한 사람이다. 내 책임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태평스러우면서 내 책임 안 쪽의 일만 걱정하는 내가 비겁하다. 게다가 내가 걱정하는 건 내 일상의 모든 책임들인데, 그렇다고 그 책임들을 잘 해내고 있는 것도 아니니 너무 한심스럽다. :’( 더 잘하고싶다. 일상을 더 잘 살아내고싶다. 더 강하게, 더 꼼꼼하게. 내 삶을 다 챙겨주는..
https://youtu.be/nSDgHBxUbVQ 설명과 영상을 보고 조금 울었다. 이런 거 보면 슬프다. 사랑받는 아기의 순간은 내게도 있었는데, 그게 다 거짓말같다. 다 진실이었대도 시간이 지나 이렇게 사라질 일이라면 다 무슨 소용일까 싶고. 그렇다고 영원히 진행되는 사랑만 의미있냐 하면 그것도 아닌데. 가족이 있을 때의 나와 가족이 없을 때의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닌데, 나는 계속 둘을 분리하려고 했다. 그래서 가족들과 연관된 무엇들은 이제 없는 일인냥 잘도 치워버렸다. 내가 가족들과 투닥거렸던 시간도, 상처받고 얻어맞았던 시간도, 사랑받았던 시간도 모두 여기에 있다. 역겹지만, 마음까지 옭아메는 가족제도 중심의 사회에서 살면 그 시간들을 계속 치울 수 없다. 영상을 계속 보다보면 아이에서 어른..
J가 내게 정신병 나으려고 어떤 노력을 하고있냐 물었다. 그냥 질문이었다. 나는 병원에 다니고있다고 대답했다. J는 내게, 그런거 말고 너 혼자서는 무엇을 하느냐 물었다. 나는 혼자 무엇을 하는 것이 이제는 지긋지긋 하다고 대답했다. 너무 많은 것들을 혼자서 해야 했다. 거의 정신이 처음 들었던 것 같은 12살 때 부터 내 인생은 오롯이 내 것이었다. 아무도 내 인생을 설계해주지 않았다. 12살의 내게 그 자유는 너무 과분했고, 나는 많은 것들을 망쳤다. 내 인생을 이끌어줄 것들이 필요했다. 14살 때는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처음 갔던 대규모 복음 캠프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마음으로 공부하겠노라 다짐했다. 수요예배와 금요철야예배에 매주 참여했다. 가족들에게 수학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