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영화의 한 장면이다. 우울한 얼굴로 혼자 있는 유지니아에게 콘스탄틴이 무슨 일이냐 물었다. "남자애들이 내가 못생겼대요. 엄마는 미스 캐롤라이나에 세 번이나 당선됐는데 나는 무도회에 함께 갈 짝궁도 없어요." 콘스탄틴이 말했다. "미세스 펠런은 자기 인생을 직접 선택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유지니아는 달라요. 앞으로 정말 멋진 인생을 살거에요." 콘스탄틴은 유지니아의 손을 잡고 말을 이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다짐 해야해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떠드는 저 못된 말들을 믿을 것인가? 그걸 믿는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못생긴 거에요. 유지니아는 못생겼나요?" 유지니아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은 무도회가 끝나기까지 간식을 먹기로 했다. 함께 갈 짝궁이 없어 무도회에 갈 수 없었던..
진로 적성을 찾고 취업까지 함께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했다. 센터의 시작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프로그램 참여 청년으로서 잠시 마이크를 잡았다. 너무 잘 말해주었다는 인사들을 몇 번 들은 그 말의 내용을 블로그에도 올려본다. "어른들 앞에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발언할 수 있는 기회는 참 드물고 소중하기때문에 하고싶은 말 꼭 다 하려고, 또 스마트폰 중독 세대로서 스마트폰 메모 어플에 오늘의 할 말을 적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카페 노동자, 정신 질환자, 글쓰는 사람) 이아진입니다. 한국 사회는 참 정겹고 또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불평등에 대해 말하자면, 계급이 아주 세세히 나뉘어있어 사람이 참 궁상맞고 이상해집니다. 저는 가끔 저항합니다. 그리고 자주 타협합니다. 더 자주는 도망칩니다. 내 능력과 ..
순이는 학교가 끝나면 늘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할머니 떡볶이’에서는 순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1인분이 2천원이다. 떡볶이 할머니는 고추장보다 케첩을 많이 넣고 떡볶이를 만들었다. 떡볶이 1인분에 오뎅 두 개가 순이의 저녁식사였다. 순이는 아빠랑 단 둘이서만 살았는데, 순이 아빠는 밖에서 저녁밥에 막걸리까지 잡숫고 집에 오셨다. “이걸로 떡볶이도 사 먹고 오뎅도 사 먹어라.” 그렇게 말하며 순이에게 매일 주어지는 5천원권 한 장은 어린 나이에 큰 돈일 수도 있었지만, 준비물을 사려면 턱없이 모자란 돈이었다. “아빠. 서예 세트를 사야 하는데 만 오천원이래요.” 순이는 술에 취한 아빠의 이상한 표정이 무서워 공손하게 말했다. 순이 아빠는 순이에게 만 오천원의 돈이 아니라 한 시간 반짜리 옛날 얘기를 꺼냈다..
불안은 막막하다는 느낌에서 시작된다. 뭘 해먹고 살 것이며 내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이고 집은 언제 다 치울 것이며 이 집 다음에는 어디에 살 것인가. 너는 네 인생에 진정 만족하는가, 이게 최선인가. 대체로 정답도 없거니와 답이 떠오르더라도 당장 뭔가 실행할 수는 없는 것들이다. 최선을 다해 무시하고 나는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운다. 초콜릿을 먹고, 라면을 먹는다. 다리를 꼬았다가 푼다. 의자 위로 가부좌를 틀었다가 풀고 신발을 신는다. 한 쪽 다리를 떤다. 그러지 말자고 생각하며 다리를 꼬았다가 또 다시 푼다. 심장이 너무 뛰는 것 같아 물을 마신다. 집에 가면 무엇을 할지 생각한다. 내일은 무엇을 할지 생각한다. 계획대로는 안하겠지만 당장 그 생각을 하면 조금 편해진다. 보통 이쯤에서 아얘 일어나..
김영하 작가의 책읽는 팟캐스트를 요즈음 다시 듣고있다. 휴대폰이 정지된 이후로 나는 집 밖 어딘가 와이파이가 연결되는 곳에서 팟캐스트와 인터넷 괴담들을 다운받곤 한다. 오늘은 아침부터 도서관에 다녀오자는 다짐을 했었지만 아침은 커녕 정오가 다 되어 일어났다. 어제도 나는 새벽 세시에 잤고, 당연하게도 기상 시간이 점점 늦춰지고있다. 이걸 일종의 불면증으로 여겨도 될런지 모르겠다. 아홉시나 열시에 일어났어도 새벽 세시가 넘어 잠을 자는데, 피곤하다는 것을 얼마나 느끼던간에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비빔면을 두개 끓여서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갈 채비를 하며 옷을 갈아입고서도 한참을 엎드려 요리중독을 했다. 팟캐스트도 계속 들었다.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유독 재미있어 벌써 몇..
내게 아직 기회가 있다는 것이 감격스럽고 두렵다. 나는 몇 번이고, 얼마든지 망칠거다. 우울증을 오랫동안 앓으면서 집에 틀어박혀 나를 고립시켰던 때는 많지만, 그 결과가 신용카드를 비롯한 각종 공과금들의 연체로 이어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처음에 다짜고짜 누워버렸을 때는, 어떻게든 될 것이니 일단 쉬자고 생각했다. 나는 서러울만큼 쉬고싶었으니까. 이미 엎질러진 상황, 몸이나 편히 쉬고 다시 생각하고싶었다. 그게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몰랐다. 상황을 망치기 직전의 한 달 이상을 나는 지각도 참 많이 했고, 기분도 꾸준히 가라앉았었다. 버스 창가에 앉아서도 내 처지를 생각하다 눈물이 펑펑 나서 한참을 울었던 적도 많다.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너무 힘들었다는게 새삼 다시 느껴지면서 나 자신을 안타까이 여..
냉장고에서 유통기한 지난 요플레를 꺼내 먹은 것이 3일 전이었다. 실수로 한 번 코드를 뽑았다가 다시 꽂은 냉장고에 있던 요플레였다. 날짜가 어디에 적혀있는지 확인하지도 않았다. 일단 입 안에 넣어보니 괜찮았다. 먹으면서 상한듯한 시큼함이 조금 느껴졌고, 배가 아팠지만 입 안에 넣는걸 멈출 수가 없었다. 그 다음날에는 통장에 남은 돈으로 간짜장이랑 군만두를 주문했다. 어차피 마지막 식사였으므로. 나는 나를 살릴 계획이 없으므로 본능이 시키는대로 입안에 다 쑤셔넣었다. 배가 불렀지만 멈추지 않았다. 싹싹 긁어 입 안에 넣고 그릇을 내놨다. 그리고 어제는 물만 마셨다. 칩거 생활을 지속하면서 시간이 무섭게도 빠르다고 생각했었는데 배가 고프니 하루가 느리게 간다. 물을 마시며 허기를 달랬다. 의외로 버틸만한 ..
이번 일주일은 하루를 빼고 모두 지각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고칠수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하나하나 뜯어 생각해보니 나는 갑자기 우울해진게 아니었다. 늘 그렇듯 쓰레기를 치우기 싫었고, 어느날 세탁기를 돌렸으나 널기 싫었고, 씻기 싫었고, 일어나고싶지 않았다. 하기싫은 것들을 최대한 미루면서도 어떻게든 일상이 굴러갔던 것은 그 사이사이에 재미있는 일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기대하던 일정 하나가 엎어졌다. 일정 하나에 기대어있던, 진즉 했어야했던 모든 일들이 엎어졌다. 하루아침에 나를 부지런맨으로 만들어줄 그런 해결책은 없다. 익숙해져야한다. 술, 담배, 커피가 어떤 이유로 마법을 부려 나를 정신차리게 해주거나 나의 솔직한 자아를 마주할 수 있게 해줄거라 늘 기대한다. 사실은 항우울제에게도 마법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