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다’라는 단어가 우울장애와 얼마나 밀접한지 잘 모르겠다. 오늘은 알람을 잘 듣고 일어났음에도 일어나기 싫어서 계속 누워있었다. 최대한 게으름을 부리다 나왔고, 택시를 잡는 과정도 다른 때보다 어려웠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내 머리는 현실을 아주 천천히 인식하고있다. 나는 여전히 생각이 많은 사람인데, 뇌가 우울에 허덕이느라 제대로 기능을 못하니 평소같은 분량의 생각에 한 번 몰입하고나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있다. 무섭다. 생활패턴이 잡혔기때문에 우울하다고 아침을 다 날려 잠을 자는 일은 이제 없다. 지금 직장은 무척 편안한 분위기이고 일도 너무 한가한거나 바쁘지 않아서 좋다. 여기에서 진급을 하거나 연봉이 대단히 인상되는 일은 없을테지만 지금의 내가 밥벌이를 하며 다니기에 아주아주 좋은 직장..
이 사람은 인도에서 살며 수채화로 그림을 그리고 스캔을 떠서 전송한다고 했다. 이 낭만적인 사람의 일러스트 그림 전시가 2018년 11월부터 12월까지 있었다고한다. 매주 금요일 연재되던 웹툰 ‘진눈깨비 소년’은 스토리 전개도 잔잔하니 좋았으며 와닿는 부분이 많아서 다 밑줄긋고 내 생각을 메모하고싶었다. 이 웹툰에 처음 빠졌을 적의 나는 우울증때문에 뭘 하기가 어려울 적이었다. 생각의 가지가 너무 많이 뻗는데다가 한 번 볼 때 마다 책을 읽듯이 집중해야해서 웹툰을 챙겨보는 일이 꽤나 버거웠다. 대신 단행본이 나오면 꼭 사자고 생각을 했더랜다. 그리고 오늘 또 생각이 나서 검색해보고 끝나버린 전시 소식을 접한 것이다. 아. 나는 또 무언가 놓쳤던 것이다. 하지만 단행본은 절판되지 않았다. 전시를 못 ..
김뜻돌님의 공연, 사라져라는 곡을 부르고 소리를 지르고 싶어 만든 곡이라고 소개했다. 여러분들 위해서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노래라고 설명한다. 예쁘다. 당신이 언어가 아닌 노래를 부르는 구간이 무섭다. 앞의 부분은 일본어로 불러서 어차피 내가 못알아들을 언어였음에도 언어가 아닌 노래를 부르는 구간과는 전혀 다르다. 이것은 언어가 아니고 노래라는 그 음의 빈 틈이 나 자신을 마주하게끔했다. 도망치고싶다. 그런 기분을 느낀다. 왜, 왜냐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나로서 살아있는 것은 겨우 버티며 죽어가는 나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겨우 살아 지금까지 왔다. 이 이후에 더 좋은게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고 눈을 마주쳐주지 않을 때 나는 내 어딘가 단단히 잘못되었..
정신과에서 회피에 대해 말했다. 내 성격 유형의 특징이 ‘회피’인데 난 회피를 안하니까 이 유형이 아닐 수 있다 생각했으나 매사에 그렇게 살고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즈음 연애하고싶은 마음이 들어서 이 사람 저 사람 눈여겨 보는데, 여러 사람을 눈여겨 보고 마음에 담는 것이 꼭 내 깊어지는 감정에 대한 회피 같다고 말했다. 연애 뿐만 아니고 모든 인간관계에서 나는 한 사람에게 깊이 빠지기를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내가 깊게 빠지면 잘되지 않을거라는 확신같은게 있어요.” 내 말에 주치의가 대답했다. “확신이 있는게 아니고, 지레 겁먹는거죠.” 그리고 정신과 진료를 꾸준히 받는 것은 회피하는게 아니라고 짚어주기에 내가 말했다. “그래서 제가 회피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거에요.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고 약을 먹..
며칠전 공연이 끝난 뒤 흥겨운 술자리를 가졌다. 새벽 두시 즈음 매장의 영업이 끝났다하야 다같이 밖으로 나왔다. 몇 사람이 차를 타고 떠났다. 또 남은 몇사람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갔다. 나는 집에 가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집에 안갔다. 그 자리엔 장씨도 남아있었는데, 내 의도가 뭐였든간에 나는 생떼를 부렸다. 집에 가지 않겠다는 생떼였다. 홍대에서 방황하는 24살 여성이 살해당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것이 소수점의 퍼센트라 하더라도 중요한건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날 수 있다는 거 였다. 이 대책없는 인간을 걱정한 장씨는 내게, 어여 집에 가라고 타일렀다. 나는 집에 가고싶지 않았다. 장씨도 집에 갈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영화를 보러 가려던 유빈을 마주쳤다. 이 착한 두 사람은 나를 위해, 혹은 스스로의..
병원의 점심시간이 한시반부터 두시반인줄로 알고 바삐 걸음을 옮겨 한시 십오분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은 한시부터였다. 점심시간이라고 설명하는 카운터 직원분에게 “제가 오늘이 아니면 못와서요. 어떻게 약만이라도 안될까요?” 여쭈어보니 물어나 보겠다고 하셨다. 조금 기다렸다가 상담을 받으러 들어갔다. 앞에 상담한 다른 환자분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본인 부르는 것으로 듣고 들어와서는 내 옆에 앉았다. 의사가 일으켜 내보내면서 “다른 환자가 있는데 그렇게 앉으시면 어떡해요. 이만큼 인지능력이 떨어지신거에요.” 그렇게 설명했다. 자리로 돌아와 내게 놀랐겠다고 말을 건넸고 나는 그냥 웃었다. 아주 조금 놀랐고, 불쾌한 순간은 없었다. 공연 보러 여행 다녀온 이야기 하고 후려치기를 당한 것을 이야기했다. 의사는 그 사람..
오랜만에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무언가 쓰려 한다. 며칠 전 한국남자와 말다툼 끝에 “질 떨어져서 여기 못 있겠네요. 꼬추들끼리 재미있게 노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난 것이, 그 한국남자가 박박 우기며 말 같지도 않은 말 했던 것이, 아무도 그 헛소리를 막지 않았던 것이, 그 공간 그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분노만이 문제였던 것이 기억에 박혀 떠나지 않는다. 기억을 고이 접어 날려버리기 위해 처음부터 정리를 해봐야겠다. 내가 중간에 잠시 나갔다 왔을 때, 사람들은 화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언니1, 2가 굳이 여성을 가리켜 “잘생겼다” 표현하는 것이 불쾌하다는 말을 했다. 한국남자는 그냥 칭찬일 뿐이라고 말했다. 언니1,2는 그게 아니라고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
좁은 화장실을 차지하던 수납 뭐시기를 닦아서 신발장으로 옮겼다. 이제 이건 신발장이다. 이사 온 이후 계속 화장실에 있었고, 구멍 송송 뚫린 것을 보니 화장실에 두라고 만들어진 수납 뭐시기였지만 내가 현관문 앞에 두고, 신발을 올려놨으니 이제 신발장이다. 오래된 운동화 두켤레를 물에 행궈 창고에 뒤집어뒀다. 해가 뜨면 햇빛이 가득 들어와 마를 것이다. 한참 안 신은 구두도 물에 헹궈서 뒤집어놨다. 빨래를 두 번 돌렸다. 재활용 쓰레기를 세묶음 버렸다. 일반쓰레기 봉투 20L 하나를 다 채워 묶었다. 이건 내일 내놓을 거다. 매트리스를 원하는 위치로 옮겼다. 매트리스 옮기면서 그 근처 바닥을 한 번 쓸었다. 덥다. 더워서 큰 일이 날 것만 같다. 지금 내가 이렇게 힘든 것이 이미 큰 일이다. 그런데 오늘..